세 가지 초월적 가치(The Three Transcendentals)
아름다움은 하나님에게서—그분의 성품과 창조 안에서—나오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와 상관없이 객관적인 실재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름다움은 진리와 선함과 같다. 진리와 선함 또한 하나님의 성품에 뿌리를 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실재이다.
진리(Truth), 선함(Goodness), 아름다움(Beauty)은 때때로 “세 가지 초월적 가치(The Three Transcendentals)”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하나님께 뿌리를 둔 객관적이고 초월적인 실재이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는 서로 조화를 이루며 서로를 규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것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위격 사이에서 흐르는 생명을 주는 조화로운 통합성을 반영한다.
밀러는 말한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나라 문화를 규정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은 이 세 가지 초월적 가치 모두와 깊이 관계할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러한 능력을 로고스(Logos),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라는 말로 설명했다.
- 로고스(Logos): 생각하고 추론하는 능력. 진리(Truth)에 해당한다.
- 에토스(Ethos): 타고난 도덕 감각, 즉 양심. 선함(Goodness)에 해당한다.
- 파토스(Pathos): 감정과 정서. 시각, 청각, 촉각 등 감각적 경험을 통해 표현된다. 아름다움(Beauty)에 해당한다.
| 진리 (Truth) | 로고스 (Logos) | 언어, 논리, 수학 등을 사용해 사고하고 추론하는 능력 |
| 선함 (Goodness) | 에토스 (Ethos) | 양심, 즉 “마음에 기록된 법”(롬 2:14-15) |
| 아름다움 (Beauty) | 파토스 (Pathos) | 우리의 감정과 정서 |
로고스, 에토스, 파토스는 모두 인간 본성의 필수 요소이다. 그것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존재하고 인간의 번영을 위해 꼭 필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세속화되고 물질주의적인 서구 사회에서는 아름다움이 종종 무시되거나 축소된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좋기는 하지만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M. Thomas Seaman은 이러한 근대적·세속적 사고방식에 도전한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단지 장식적이고 꾸미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아름다움이 도덕적 필수 요소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구조 속에 아름다움을 짜 넣으셨다. 아름다움은 의의 가장 높은 형태이다. 하나님의 세계에서 아름다움과 진리는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인간의 사고 속에서도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백합꽃을 그리는 데나 영원한 산들을 만드는 데나 동일한 정성을 기울이신 하나님께서는 진리와 아름다움을 거룩한 연합 안에 묶어 두셨다. 하나님께서 함께 결합하신 것을 인간은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은 진리를 위한 도덕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소통하실 때도 진리, 선함, 아름다움 이 세 가지를 모두 사용하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단지 언어와 말씀(로고스)만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도덕적 감각(에토스)과 감정(파토스)에 호소하는 방식으로도 자신을 나타내신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셨을 때, 돌판에 새겨진 말씀뿐 아니라 높은 산, 번개, 천둥, 짙은 구름도 사용하셨다. 그 풍성한 감각적 경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려움과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성막 건축을 명령하실 때에는 값비싼 재료와 뛰어난 예술성으로 만들도록 지시하셨다. 성막(후에는 성전)의 물리적 아름다움(파토스)은 돌판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로고스)을 보완하면서, 하나님의 도덕적 선함(에토스)의 보편적 기준을 전달했다.
이 세 요소는 모두 필수적이다. 서로를 보완하며 정의한다. 우리는 세 가지 모두가 필요하다. 현대 사상의 많은 흐름과 달리 인간은 단순한 두뇌가 아니다. 인간은 어떤 기계적 인공지능 시스템 같은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 전체를 경험하고 참여하도록 지음 받은 몸을 가진 존재이다.
아름다움은 인간의 번영과 진리·선함의 인식을 위한 선택적 장식물이 아니다. 그것은 도덕적 필수 요소이다.
아름다움의 힘을 생각해 보라. 아름다움은 우리의 영혼 깊은 곳을 만지며 깊이 전달된다. 한스 우르스 폰 발타자르( Hans Urs von Balthasar)는 “아름다움은 당신을 사로잡고, 당신을 변화시키며, 그리고 당신을 부르고 보낸다.” 고 말한다.
신부 토마스 두베이(Thomas Dubay)는 음악의 힘을 예로 들며 아름다움의 능력을 설명한다.
인간은 어떤 동물도 경험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음악에 의해 움직임을 받는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가 음악을 연주할 수 있든, 읽을 수 있든, 혹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음악은 우리를 움직인다는 점이다. 음악은 마음을 거치지 않고도 우리의 감정에 도달한다.
두베이는 아름다움이 말과 논리만으로는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한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이것을 경험한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셀 수 없는 별들과 행성들, 먼 은하들을 보며 깊은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아름다움과 질서, 규칙성은 우리의 감정을 움직인다. 그 장엄함은 말만으로는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한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시편 19:1-4)
두베이는 아름다움이 마치 불꽃을 향해 날아가는 나방처럼 사람들을 하나님께 이끈다고 말한다. 제리 루트(Jerry Root)와 스탠 거스리(Stan Guthrie)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이며 가장 효과적인 메신저이다. 우리는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통해 세상이 선하고 질서 정연하다는 사실을 배우며, 그 후에야 그것을 지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예술성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된다.
휘터커 체임버스(Whittaker Chambers)의 사례를 생각해 보라. 그는 한때 공산당원이자 강경한 무신론자였고 소련의 스파이였다. 그러나 1938년 어느 날 아침 어린 딸에게 밥을 먹여 주다가 그녀의 작은 귀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 순간 그는 귀의 형태가 마르크스주의적 물질주의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이처럼 아름답고 독특한 것은 설계를 암시했고, 설계는 설계자를 암시했다. 하나님께서는 딸의 귀라는 지극히 평범한 아름다움과 목적 있는 디자인을 통해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의 삶을 드렸다.
David Taylor는 말한다.
아름다움은 오직 그것만이 할 수 독특한 힘이 있다. 그것은 갈망을 일으키며, 그 갈망은 모든 창조된 아름다움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완전하게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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