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0:2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비추셨도다.”
아름다움 (BEAUTY)
사물이나 사람 안에 존재하는 외적·내적 특성들의 조화로서, 기쁨과 깊은 만족을 주는 것.
아름다움은 우리를 깊이 감동시키고 경외감과 경이로움을 채워 준다.
하나님이 아름다움의 궁극적 근원이시므로, 아름다움은 개인의 취향을 초월하는 객관적 실재를 가진다.
아름다움은 진리(truth), 선(goodness)과 함께 세 가지 초월적 가치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재정의된 아름다움 (BEAUTY REDEFINED)
개인의 주관적 감각이나 취향에 호소하는 미적 특성들의 조합.
아름다움은 전적으로 개인의 선호와 자기표현의 문제일 뿐이다.
기독교 작가 오스 기니스는 그의 증조할머니가 자살 직전까지 갔다가 되돌아선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의 이름은 제인 루크레티아 데스테르(Jane Lucretia D’Esterre)였고, 때는 1815년이었다. 당시 그녀는 스코틀랜드에 살고 있는 열여덟 살의 젊은 여인이었다. 그녀는 젊고 재능 있으며 아름다웠지만, 남편이 결투에서 죽은 직후였다. 그녀는 홀로 남겨졌고, 두 어린 자녀를 부양해야 하는 가난한 처지가 되었다.
이처럼 슬픈 상황을 고려하면, 작은 강 아래의 차가운 물을 내려다보며 다리 끝에 서 있던 제인의 암울한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 제인이 뛰어내리려는 순간, 그녀의 시선은 강 건너편 작은 들판으로 잠시 향했다. 그곳에는 젊은 농부가 말과 쟁기를 가지고 일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와 비슷한 나이로 보였고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꼼꼼하고 능숙하게 일한 결과, 방금 갈아엎은 고랑들은 마치 거장 화가의 캔버스 위에 그려진 붓질처럼 아름다웠다. 농부가 밭을 갈면서 조용히 찬송가를 부르는 희미한 목소리도 들려왔다.
제인은 자신도 모르게 매료되었고, 깊은 경탄과 감탄이 마음 속에서 솟아올랐다. 그러나 곧 그 감탄은 스스로를 향한 책망으로 바뀌었다. ‘나는 지금 이 다리 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왜 자기 연민에 빠져 있는가? 나를 필요로 하는 두 어린 자녀가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할 수 있는가?’
새로운 결심을 품은 그녀는 집으로 돌아갔다. 아름다운 들판과 자신의 일을 훌륭하게 수행하는 농부의 모습을 본 것이 그녀를 죽음에서 구해낸 것이다.
그 농부에 대해 더 알려진 것은 없지만, 그는 아마도 그리스도인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농사일에 아름다움을 담아냈고, 밭을 가는 단순한 노동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자 했다. 잘 가꾸어진 밭에 드러난 그의 하나님께 대한 헌신은 제인 안에 희망을 새롭게 하기에 충분했고, 그녀를 절망에서 끌어내었다.
이 단순한 이야기는 아름다움의 힘을 보여 준다. 엘리자베스 레비(Elizabeth Lev)의 말처럼, “아름다움은 선과 진리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농부가 정성껏 가꾼 밭의 예술성은 제인이 세상 속의 선함을 인식하고, 자신의 삶이 가치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하는 창이 되었다.
참된 아름다움 (TRUE BEAUTY)
그렇다면 아름다움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아름다움은 단순히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에 달려 있다”는 말처럼 개인적 취향의 문제일 뿐인가? 아니면 우리를 초월하는 어떤 객관적 실재, 심지어 이 세상 너머의 실재에 근원을 두고 있는가?
아름다움은 정의하기 어려울 수 있다. 아름다움은 우리의 사고와 논리를 우회하여 감각과 감정을 직접 움직인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경험하지만, 그것을 깊이 생각하거나 정의하려고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의하려는 노력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올바르게 정의하자면, 아름다움은 사물이나 사람 안에 존재하는 외적·내적 특성들의 조화로서 기쁨과 깊은 만족을 준다. 아름다움은 우리를 깊이 감동시키고 경외감과 경이로움을 채워 준다. 하나님이 궁극적인 근원이시기 때문에 아름다움은 개인적 취향을 초월하는 객관적 실재성을 가진다.
아름다움과 비슷한 의미의 단어로는 매혹적인(delightful), 숭고한(sublime), 찬란한(radiant), 완전한(perfect), 영광스러운(glorious), 흠 없는(flawless), 정교한(exquisite) 등이 있다. 반대로 추한(hideous), 보기 흉한(unsightly), 혐오스러운(repulsive), 불결한(foul), 비열한(vile), 소름 끼치는(ghastly), 역겨운(loathsome) 등은 아름다움의 반대말이다.
아름다움을 생각해 보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 당신이 경험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인가?
- 그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인가?
- 당신이 경험한 가장 추하거나 혐오스러운 것은 무엇인가?
- 그것이 추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움에 끌린다. 아름다움과 기쁨, 즐거움, 만족 사이에는 강한 관계가 있다. 영국 시인 John Keats의 말처럼, “아름다운 것은 영원한 기쁨이다.” 아름답고 숭고하며 완전한 것은 우리를 끌어당기고, 추하고 더럽고 비열한 것은 우리를 밀어낸다.
아름다움은 모든 문화 속에 존재하는 “일반은총(common grace)”이다. 사람들은 의복, 음악, 음식, 춤, 건축을 통해 아름다움을 경험한다. 또한 형태와 색깔, 소리와 디자인, 패턴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산의 장엄한 풍경과 찬란한 일출의 색채 속에서, 눈송이의 정교한 무늬 속에서, 어린아이의 눈 속에서, DNA 분자의 놀라운 질서와 대칭 속에서, 그리고 멀리 떨어진 은하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본다. 심지어 정성껏 갈아엎은 밭이나 잘 가꾼 정원에서도 아름다움을 경험한다.
우리는 또한 청결함과 질서, 순수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잘 정돈되고 품위 있게 꾸며진 방은 더럽고 어지러운 방과는 전혀 다르게 아름답게 보인다. 수정처럼 맑은 산 계곡이 쓰레기로 뒤덮였을 때보다 훨씬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 깊은 차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나타난 정교한 질서와 설계 속에서 아름다움을 경험한다. 그 질서는 수학적으로 설명될 정도로 정확하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리차드 파인먼(Richard Feynman)은 이렇게 말했다.
“물리 법칙의 진리는 그 아름다움과 단순함으로 알아볼 수 있다.”
또한 모든 아름다움이 외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친절, 긍휼, 사랑, 희생, 용기, 내적 강인함 같은 도덕적 덕목 안에서도 보이지 않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경험한다. 아름다움과 선함, 곧 도덕적 덕성 사이에는 깊은 연결이 있다. 예를 들어 시편 96:9은 하나님의 도덕적 완전함을 아름답다고 묘사한다.
“아름다운 거룩함으로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베드로도 내면의 덕을 “내적 아름다움”으로 묘사한다(벧전 3:3-4).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우리는 이 모든 방식과 그 이상의 방식으로 아름다움을 경험한다. 미국의 사전 편찬자 다니엘 윕스터(Daniel Webster)는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모든 특성을 정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아름다움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은 “아름다움의 완전함”(시 50:2)이시다. 그분은 영광스럽고 흠이 없으며 도덕적으로 완전하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인자하심, 자비 안에서 그 아름다움의 완전함을 본다. 또한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를 만지시고 치유하신 긍휼 속에서 본다. 그리고 가장 숭고하게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신 십자가의 희생적 사랑 에서 본다.
우리는 또한 창조 세계의 장엄한 예술성 속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경험한다. 하나님은 최초의 예술가이시다.
- 하나님은 최초의 작곡가이시다. 파도와 바람의 소리, 하늘의 침묵, 우주의 음악, 새벽의 새소리를 창조하셨다.
- 하나님은 최초의 화가이시다. 장엄한 일출과 일몰, 꽃과 식물과 새와 나무가 가득한 화려한 정원을 만드셨다.
- 하나님은 최초의 조각가이시다. 그랜드 캐니언, 로키산맥, 알프스, 히말라야를 빚으셨다.
- 하나님은 최초의 안무가이시다. 돌고래의 움직임, 비둘기의 구애 춤, 벌새의 비행, 눈송이의 낙하와 낙엽의 움직임을 설계하셨다.
- 하나님은 최초의 저자이시다. 최초의 언어를 주셨고 성경과 시편의 찬양을 허락하셨다.
아름다움은 또한 인간의 영혼에서도 비롯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에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다.
소설가 톨킨(J. R. R. Tolkien)은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것을 바탕으로 인간은 실제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작곡가는 누구도 들어보지 못한 교향곡을 만들 수 있다. 화가는 누구도 본 적 없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시인은 누구도 읽어보지 못한 시를 쓸 수 있다.”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그것을 즐기고, 또한 창조하는 것은 인간됨의 중요한 부분이다.
대로우 밀러(Darrow Miller)의 말처럼 아름다움은 삶의 필수 요소이다.
아름다움은 인간의 번영과 풍성한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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