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믿음 (Christian Faith)
이제 그리스도인에게 믿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자. 기독교 신앙은 누구나 던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로부터 시작한다.
- 하나님은 존재하시는가?
-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가?
- 성경은 역사 속에서 신뢰할 만하게 전해져 왔는가?
- 예수님은 자신이 주장하신 바로 그분이신가?
이 질문들은 매우 중요한 문제들이다. 사실상 모든 것이 여기에 달려 있다. 이 질문들에 대해 정직한 답을 찾기 위해 신중한 추론과 관찰, 그리고 문헌적·역사적 증거를 검토하고, 성령의 깨우치심 가운데 긍정적인 결론에 이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에 잘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한 단계가 더 필요하다. 진리라고 깨달은 것을 믿어야 한다. 자신을 그리스도께 온전히 헌신함으로써 그 증거를 받아들여야 한다. 기독교적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를 넘어, 항복과 순종으로 표현되는 적극적인 신뢰이다.
믿음은 성경의 중심 주제이다. 이 장에서는 깊이 있는 연구를 모두 다룰 수는 없지만, 히브리서 11:1-2에 나오는 유명한 믿음의 정의를 시작으로 몇 가지 핵심 본문을 살펴보겠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이 구절에서 믿음의 대상은 무엇인가? 하나님, 그리고 특별히 성경 속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들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완전한 확신과 신뢰를 가리킨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선진들”이다. 아벨, 에녹, 노아, 야곱, 요셉, 모세, 라합 등 많은 인물들이 있다. 그러나 한 부부, 곧 아브라함과 사라는 히브리서 11장 1절이 말하는 믿음의 훌륭한 본보기이므로 좀 더 자세히 살펴볼 가치가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를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구속의 계획을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 위대한 약속은 창세기 12:1-3에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큰 민족”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자녀가 없었고 이미 아이를 낳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았다. 후손이 없는데 어떻게 큰 민족의 조상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이 의심할 여지 없이 신실하신 분임을 믿었다.
히브리서 11:11은 이렇게 말한다.
“믿음으로 사라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신실한 분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품이 바로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의 대상이었다. 그들의 믿음은 맹목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과 동행한 오랜 세월의 친밀한 경험 위에 세워진 것이었고, 하나님께서는 걸음마다 자신이 신뢰할 만한 분임을 입증해 오셨다.
로마서 4:19-22은 이렇게 말한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아니하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히브리서 11:1의 표현대로 말하면, 아브라함은 자신이 바라는 것에 대한 완전한 확신과 아직 보지 못한 것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큰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을 확신했다.
한 기독교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성경적 믿음은 상상 속의 희망이나 막연한 소망이 아니다. 오히려 아직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미래의 일이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이기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고한 확신이다.”
결국 하나님은 다시 한번 신실하심을 증명하셨고 이삭이 태어났다.
그 후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을 시험하셨다.
창세기 22:1-2
“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산에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이삭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로 그 자녀였고, 하나님은 그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 명령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매우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심지어 이삭의 손발을 묶어 제단 위에 올려놓고 칼을 들어 희생 제사를 드리려는 순간까지도 순종했다.
히브리서 11:17-19은 아브라함의 놀라운 믿음을 이렇게 설명한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나, 그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우리가 알다시피 결국 하나님은 마지막 순간에 숫양을 대신 제물로 준비하셨고 이삭은 살아났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에 신실하실 것을 완전히 믿었다.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셔서라도 약속을 이루실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러한 실제 성경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 역시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을 신뢰할 수 있다.
- 하나님은 거짓말하지 않으신다.
- 하나님은 속이지 않으신다.
-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신다.
- 하나님의 말씀은 반석처럼 견고하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증거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역사 속 사역에 담겨 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수록, 삶 속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성경 전체의 메시지는 사실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님을 신뢰하라.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라. 하나님은 결코 너를 실망시키지 않으신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 (Saving Faith)
신약성경에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saving faith)”에 대해 많이 기록되어 있다. 구원하는 믿음의 근거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로 시작된다.
-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주장하신 바로 그분이신가?
- 그분은 실제로 로마의 십자가에서 죽으셨는가?
- 그분은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내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담당하셨는가?
- 이 놀라운 복음이 정말 사실일 수 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해 정직하게 답을 찾고, “그렇다. 이것은 사실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구원의 문턱까지 오는 것이다. 그러나 구원하는 믿음은 성령의 필수적인 도우심 가운데 그 문을 통과해야 한다.
마지막 단계는 단순히 사실을 믿는 것 이상이다. 예수님을 왕과 주님으로 인정하며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리는 완전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구원하는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의 구주이시며 하늘과 땅의 왕이신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분께 완전히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이러한 완전한 믿음은 회개와 복종과 순종으로 나타나며, 바로 이것이 우리를 구원한다.
우리는 “선한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우리의 죄는 너무 깊다. 우리는 오직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값없는 구원의 선물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3:21-25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느니라.”
또한 바울은 에베소서 2:8-9에서 말한다.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이것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다.
종교개혁의 유명한 외침은 “오직 믿음(Sola Fide)” 이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곧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현대 사전들이 종종 정의하는 것과 달리, 그리스도인의 구원하는 믿음은 단지 그것이 사실이기를 바라기 때문에 아름다운 신화나 동화를 믿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증거를 무시한 채 하는 “맹목적인 신앙”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이다.
구원하는 믿음은 역사적으로 사실인 것, 그리고 증거들에 근거한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17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너희 믿음도 헛되고.”
다시 말해, 복음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꾸며낸 이야기라면 우리의 믿음은 아무 가치가 없다.
그러나 복음의 진리를 뒷받침하는 역사적·문헌적 증거는 충분하고도 넘친다.
내 말만 믿지 말라. 스스로 연구해 보라. 어려운 질문들을 던져 보라. 그리고 정직한 답을 찾아보라.
만약 증거가 압도적으로 복음의 진리를 가리킨다면,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 증거를 받아들이라.
정직하게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의 초기에 의심하고 회의적인 태도를 갖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특히 복음이 주장하는 내용처럼 놀라운 주장들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모든 증거가 압도적으로 복음의 진실성을 가리킨다고 확신하게 된 이후에도 계속 의심만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교만하고 반항적인 마음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병든 자들을 고치실 때 종종 이렇게 물으셨다.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을 믿느냐?” (마태복음 9:28)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묻고 계신다.
“나는 내가 말한 바로 그 사람인가? 너는 나를 완전히 신뢰하느냐? 아니면 아직도 의심하고 있느냐?”
히브리서 11:6은 이렇게 말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우리는 선행으로 구원을 받지 못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완성된 사역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그 믿음이 진짜라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계명에 대한 충성된 순종의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후에도 예전과 똑같은 죄된 삶을 살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
단지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한 일종의 “보험”처럼 구원을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이다.
독일의 목사이자 신학자인 본훼퍼는 이것을 “값싼 은혜(cheap grace)” 라고 불렀다.
이러한 태도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믿음이 부족함을 드러낸다.
야고보서 2:14-26은 참된 믿음을 이렇게 설명한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하나님에게 완전한 항복을 포함한다. 그리고 그 항복은 반드시 변화된 삶으로 나타난다.
- 우리는 우리의 재정을 예수님께 맡기는가?
- 우리의 직업을 맡기는가?
- 우리의 삶을 맡기는가?
- 우리의 가정을 맡기는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우리의 믿음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세상에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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