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잃게 되는가?
이념적 사회정의(ideological social justice)가 성경적 정의(biblical justice)를 계속 뒤집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잃게 될까?
우리는 이미 그 변화를 보고 있으며,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감사는 줄어들고 불평과 원망은 늘어난다.
- 개인적 책임은 줄어들고 피해자 의식, 적대감, 분열, 그리고 비난은 늘어난다.
- 법치주의는 계속 침식되고, 도덕 규범과 법은 자의적으로 변하며, 여론을 움직일 힘을 가진 집단의 변덕에 따라 좌우된다.
- 적법 절차(due process)가 사라진다. 더 이상 “유죄가 입증되기 전까지는 무죄”라는 원칙이 유지되지 않는다.
- 표현의 자유와 어려운 주제를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논의할 능력을 잃게 된다. (토론을 차단하면 폭력적 극단주의가 들어설 문이 더욱 넓어진다.)
- 예의, 사회적 통합, 결속, 관용의 기초를 잃게 된다. 더 이상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살자”도 없고, “네 원수를 사랑하라”도 없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념적 사회정의라는 거짓 종교는 사람들에게 정체성, 공동체, 목적의식을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을 유혹한다. 그러나 다른 모든 사이비 종교와 마찬가지로 일단 그 안에 들어가면 빠져나오기가 매우 어렵다.
전 사회정의 운동가였던 바렛 윌슨(가명)은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별표와 ‘좋아요’를 주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냉소적인 게임을 하고 있었다. 군중에게 공격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공개적으로 우리가 그들의 편이라는 것을 보여 주게 된다.”
유명한 복음주의 지도자들 중에 많은 목사들이 이 위험하고 비성경적인 세계관의 핵심 교리들에 동조하고 가르치므로 소금과 빛의 책임을 포기한 것은 참으로 비극이다.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진리를 선포하기보다,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고 관계를 깨뜨리며 국가를 분열시키는 사상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바렛과 같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교회가 이념적 사회정의를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의가 실제로 무엇인지를 말해 주는 것이다.
그들이 받아들인 위조된 이야기 속에서 정의란 전통적 구조와 제도를 무너뜨리고, 이른바 억압자 집단으로부터 피해자 집단에게 권력과 부를 재분배하는 것이다. 그 목표는 결과의 거짓 평등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의의 세속적 왜곡일 뿐이다.
반면 성경에서 정의란 십계명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약 2:8)는 황금율에 나타난 하나님의 완전한 도덕법에 순응하는 것이다.
감사하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념적 사회정의의 위험성을 깨닫고 있다. 이에 저항하는 운동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 파괴적인 세계관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그것을 반대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대신 성경적 세계관을 지키고, 변호하며, 선포해야 한다.
우리는 단지 “반(反) 이념적 사회정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친(親) 성경적 정의”가 되어야 한다.
다음은 이념적 사회정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특별히 주의해야 할 몇 가지 영역이다.
문화 변혁 (Cultural Transformation)
이념적 사회정의는 혁명적이다. 억압받는 자들에게 억압자를 전복하라고 요구한다. 그 싸움은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전술적으로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의 “문화 참여”나 “문화 변혁”을 위한 노력을 영혼 구원이라는 우리의 영적 사명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치부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세상은 망해 가고 있는데, 왜 세상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애써야 하는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적 세계관은 이 세상을 하나님의 작품으로 본다.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세계를 사랑하신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단지 사람의 영혼을 세상에서 건져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타락으로 인해 깨어진 모든 것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다(골로새서 1:15-20).
성경적 세계관은 전도와 영적 중생을 목적 그 자체가 아니라 더 큰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본다. 그 더 큰 목적은 만물의 화해이다.
신약학자 N. T. 라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신약성경의 가장 중요한 강조점은 복음이 세상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복음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세상의 주님이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이 세상을 변화시키며, 그 변화가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 변화의 사역에 참여할 수 있다.”
성경적 세계관에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와 문화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열정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변화는 먼저 영적이고 내적인 것이어야 하며, 그 후에 사회와 문화 속에서 외적으로 나타난다. 세상의 문제는 단순히 사회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타락한 마음과 생각 안에 있다.
모든 긍정적인 문화 변화는 복음 선포와 성령에 의한 내적 거듭남을 포함한다.
인종차별 (Racism)
이념적 사회정의는 인종차별(그리고 성차별, 동성애·트랜스젠더 혐오)을 광범위하고 구조적이며 만연한 것으로 본다.
그 지지자들에게 미국은 인종차별로 너무 깊이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혁명적 변화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반대자들은 인종차별을 축소하거나 그것이 여전히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그것은 실수이다.
엄청난 진전이 있었고, 오늘날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며 관용적인 사회 중 하나가 되었지만, 인종차별은 여전히 실제 문제이며 그리스도인들은 개인의 마음속에서나 사회 속에서나 진정한 인종차별과 싸워야 할 의무가 있다.
구조적·제도적 불의 (Structural, Systemic Injustice)
이념적 사회정의는 모든 깨어짐과 불의의 원인을 사회 구조와 제도에 둔다. 따라서 반대자들은 구조적 또는 제도적 악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인하거나 축소하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반(反)사회정의적일 수는 있어도 성경적이지는 않다.
성경적 세계관은 타락에 대한 포괄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타락은 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조직, 제도, 구조 전체를 무질서하게 만든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회복하기 원하신다.
우리는 구조적 또는 제도적 악이 존재한다는 점에 동의할 수 있다. 미국의 음란물 산업만 보더라도 연간 수십억 달러의 수익을 창출하며 성매매라는 악을 부추긴다.
제도적 악에 맞서 싸우는 것은 교회의 중심 사명에서 벗어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소명에 필수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타락한 제도가 생겨난 근본 원인인 인간의 죄성을 무시하지 않는다. 악한 구조와 제도를 개혁하려면, 결국 타락한 인간의 마음이 변화되어야 한다.
서구 문명과 미국 (Western Civilization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이념적 사회정의의 옹호자들은 서구 문명과 미국을 체계적 인종차별, 성차별, 탐욕, 그리고 불의로 인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부패한 것으로 본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반대자들은 정반대의 극단으로 치우치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국가의 역사에 대한 진실, 곧 좋은 점과 나쁜 점 모두를 붙들어야 한다.
우리가 미국이나 서구 문명을 바라보는 태도는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며 감사가 없는 정신으로 특징지어져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교만이나 우월감으로 특징지어져서도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겸손한 감사의 마음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모든 축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전술 (Tactics)
이념적 사회정의의 옹호자들은 점점 더 자신들의 이야기를 확산시키기 위해 권력 전술을 사용한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괴롭힘, 수치 주기(shaming), 위협, 플랫폼 박탈(deplatforming), 침묵 강요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취소 문화(cancel culture)는 표현의 자유, 대화, 또는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의 토론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 똑같은 권력 전술을 사용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두려움 때문에 침묵하거나 굴복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부름받았다(마태복음 5:44).
그리스도의 나라는 진리가 사랑으로 선포되고 실천될 때 전진한다(에베소서 4:15).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21)
문화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 문화를 창조하자 (Let's Move Beyond Criticizing Culture, to Creating Culture)
이념적 사회정의가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거짓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가 없고, 더더욱 “네 원수를 사랑하라”도 없다.
은혜도 없다. 용서도 없다. 겸손도 없다.
우리는 진리와 정의와 사랑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문화를 원하지 않는가?
하나님이 왕으로 존귀함을 받으시고, 모든 사람이 인종·성별·계급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존중받고 사랑받는 문화를 원하지 않는가?
사람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으로 평가받는 문화를 원하지 않는가?
이러한 문화는 오늘날에도 미국에 존재한다.
2015년 6월, 세상은 인간이 서로에게 얼마나 끔찍한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목격했다.
21세의 백인 우월주의자 딜런 루프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 있는 에마누엘 아프리카 감리교 성공회 교회에 들어가 성경공부 모임에 참여하고 있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녀 9명을 총으로 살해했다. 당국은 곧 루프를 체포했고 결국 그에게 살인죄를 선고했다. 루프의 선고 공판에서 많은 유가족들은 법정에 나와 정당한 분노를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를 용서했다.
희생자 중 한 명인 에델 랜스의 딸 나딘 콜리어는 루프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다시는 어머니를 안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혼을 긍휼히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나를 상처 입혔고 많은 사람들을 상처 입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을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나도 당신을 용서합니다.”
앤서니 톰슨은 아내를 죽인 범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우리 가족도 당신을 용서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이 기회를 통해 회개하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삶을 바꾸십시오.”
이와 같은 초자연적인 사랑과 용서는 진정한 혁명이다. 이 사람들이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이유는 그들이 원수들을 용서했기 때문이다. 그 힘은 부분적으로 자신들도 하나님께 용서받은 죄인이며, 하나님의 놀랍고 풍성한 은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데서 나왔다. 이러한 이야기는 성경적 세계관이라는 ‘변혁의 이야기(Transforming Story)’에 깊이 영향을 받은 문화 속에서만 가능하다.
그것은 강력하다. 그것은 매우 아름답다. 그것은 선하다. 그것은 참되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념적 사회정의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단순히 반대하기만 해야 하는가, 아니면 더 나은 길을 제시해야 하는가?
낸시 피어시는 정확히 이렇게 말한다.
“나쁜 세계관을 몰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세계관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문화를 비판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문화를 창조하는 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본래 인간에게 맡기신 사명이며, 성화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그 사명을 회복하도록 부름받는다.
모든 소명 속에서 우리는 문화 창조자들이며, 우리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섬김으로 살아가야 한다.”
지금은 서구 복음주의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정의에 대한 혼란은 신중한 분별력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사회정의의 누룩이 우리의 신학을 오염시키도록 계속 허용한다면, 참된 성경적 정의를 세상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때에 그 손실은 현세와 영원 속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우리의 운명이 될 필요는 없다.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사회정의의 거짓 전제를 거부하고, 참된 성경적 정의를 담대히 받아들이고 옹호한다면 말이다.
그것은 가정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우리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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