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세상을 치유하는 10가지 단어

7장 정의(Justice) -3

lamp365 2026. 5. 29. 23:16

정의의 재정의 (JUSTICE REDEFINED)

오늘날  “사회정의(social justice)”라고 부르는 한 이념(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운동)은 정의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급진적으로 재정의했습니다. 이 새로운 이념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 권력, 억압, 피해자 의식에 대한 집착
  •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을 연상시키는 전술과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방법론 사용
  • 계급, 인종, 성별, 성적 지향을 개인 정체성의 결정적 요소로 간주
  • 유대-기독교 종교, 특히 가족과 성(性)에 대한 가르침에 대한 적대감
  • 전통적 가족에 대한 반감
  • 점점 더 강력한 국가를 통한 부와 권력의 재분배에 대한 집착

수천 년 동안 유대-기독교 세계관은 서구 사회에 포괄적인 이야기와 틀, 그리고 정의의 기초와 인간 존엄성의 근거를 제공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것들이 버려졌다.

카를 마르크스(1818~1883)는 유대-기독교 세계관을 대체하기 위해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었다. 사실상 그것은 새로운 종교였다.

20세기 동안 마르크스의 종교적 거대 서사는 러시아의 레닌과 스탈린, 중국의 마오쩌둥, 그리고 북한, 베트남, 캄보디아, 쿠바에서 시험되었다. 이러한 거대한 사회 실험들은 감옥 국가, 강제수용소, 그리고 수억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량학살을 낳았다.

 

정의의 재정의

전통적인 체계와 구조를 억압적인 것으로 해체하고,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기 위해

억압자로부터 피해자에게 권력과 자원을 재분배하는 것.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여전히 존재한다.

20세기 중반 공산주의 국가들이 붕괴하기 시작하자, 유럽에서는 새로운 세대의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이 등장했다. 여기에는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 허버트 마르쿠제(1898~1979), 막스 호르크하이머(1895~1973) 등이 포함된다.

그들이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라고 부른 마르크스주의의 재구성은 미국 대학에서 “비판적 사회이론(critical social theory)”이라는 이름 아래 발전되었다.

일부 사람들이 “제도권을 통한 긴 행진”이라고 부르는 문화 전략을 통해, 문화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공교육, 학계, 언론, 엔터테인먼트 산업, 대기업, 정치 영역에 자신들의 전제를 성공적으로 심어 넣었다.

오늘날 이념적 사회정의는 서구 문화의 핵심 영역을 지배하고 있으며, 주류 복음주의 안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념적 사회정의는 기독교를 대체하려는 포스트모던 종교적 대안(“후계 이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수필가 앤드루 설리번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사회정의 이념은 종교가 해야 할 모든      역할을 수행한다. 그것은 인간과 사회 전체를 설명하는 체계를 제공한다. 즉 인간의 삶과 사회는 전적으로 사회적 권력 구조의 산      물이며, 역사는 다양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억압해 온 과정이다. 또한 이러한 얽힌 억압의 구조를 저항하고 뒤집기 위한 원칙들을      제공한다.

포괄적 세계관 (A Comprehensive Worldview)

사회정의라는 새로운 이념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그것이 하나의 포괄적 세계관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모든 세계관은 핵심에 몇 가지 기본 전제를 가지고 있으며, 그 전제들이 나머지 모든 것을 규정한다. 이러한 전제들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큰 질문들에 답한다.

  • 궁극적으로 실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 우리는 누구인가?
  •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 그 문제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념적 사회정의는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며 하나의 완전한 세계관을 형성합니다.

 

성경적 정의의 대조를 보라. 

질문                                         이념적 사회정의                                                                    성경적 세계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의 정체성은 전적으로 사회적으로 규정된다.
인종, 성별, 젠더가 우리를 정의한다.
창조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이며, 고유한 존엄성과 가치를 가진다.
인간의 근본 문제는 무엇인가? 억압. 백인, 이성애 남성 중심의 권력 구조가 여성,
유색인종, 성소수자를 억압한다.
반역: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역하므로 관계가 깨졌다.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람과 피조물)
해결책은 무엇인가? 혁명. 피해자들과 그들의 동맹이 연합하여 억압적 구조를 해체하고 전복해야 한다. 복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죄의 형벌을 대신 담당하시고 화해의 길을 여셨다.
어떻게 구원받는가? 피해자는 본질적으로 무죄하다. 억압자는 자신의 공모를 고백하고 혁명에 동참해야 부분적인 구원을 얻는다. 구원: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롬 10:9-13).
우리의 주된 의무는 무엇인가? 억압받는 집단과 연대하고 보호하며 옹호하는 것. 의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미래의 최종 심판이 있는가? 없다. 정의는 지금 여기서 인간이 실현해야 한다.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완전한 정의를 이루실 것이다.

닐 셴비(Neil Shenvi)는 이것이 서로 구별되며 양립할 수 없는 두 세계관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념적 사회정의(ideological social justice)와 기독교가 인식론(지식의 근원), 정체성, 도덕성, 그리고 권위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들에서 서로 충돌한다고 지적한다.

양측의 핵심 원리들은 정반대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념적 사회정의라는 거짓 세계관은 그 핵심에 정의에 대한 위조된 정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정의를 다음과 같이 재정의한다.

"억압적이라고 여겨지는 전통적인 제도와 구조를 해체하고,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기 위해 억압자들로부터 그들의 피해자들에게 권력과 자원을 재분배하는 것."

 

이제 이러한 잘못된 정의를 뒷받침하는 몇 가지 기본적인 세계관적 전제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들이 성경적 세계관과 어떻게 다른지를 좀 더 깊이 살펴보자.

 

우리의 근본 문제는 무엇인가?

사회정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그 답은 한 단어로 표현된다.

“억압(Oppression)”

이 세계관에서 악은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지 않는다. 인간의 타락이나 죄성에 대한 이해가 없다.

오히려 악은 사회 구조, 제도, 법률, 그리고 한 집단에게 권력과 특권을 부여하면서 불평등을 지속시키는 문화적 규범들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그러나 성경적 세계관은 매우 다릅니다.

인간의 근본 문제는 “억압”이 아니라 “반역(Rebellion)” 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우리 모두는 창조주 하나님을 거역하는 상태에 있다.

우리의 근본 문제는 억압적인 사회 구조라는 “밖의 문제”가 아니라, 죄로 어두워진 마음이라는 “안의 문제”입니다.

우리 모두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유명한 말처럼, 본래부터 죄인이며, 죄의 권세 아래 있다.

“선과 악을 가르는 선은 국가들 사이도 아니고, 계급들 사이도 아니며, 정당들 사이도 아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의 마음 한가운데를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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