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와 평등
오늘날 사람들은 “권위(authority)”라는 개념 자체를 불편하게 여기지만, 성경은 권위와 평등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하나님과 인간 모두의 차원에서 우리는 본질의 평등과 동시에 권위와 질서의 역할 차이를 함께 본다. 타락한 세상에서는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을 우월하게 여기고, 복종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본질적으로 열등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두 개념이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불가능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러한 이해가 빗나간 것이라고 말한다.
본질의 평등과 권위의 역할은 동시에 가능하다. 우리는 이것을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본다. 성경은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고 선포하면서도(신명기 6:4), 동시에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세 위격(persons)으로 존재하신다고 가르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위격은 모두 동등하게 하나님이시다. 신학자 J. I. Packer의 말처럼, “세 위격은 동등하며 … 각각 완전한 신적 본질을 공유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모두 동등하게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서로 간에 기꺼이 권위와 순종의 관계 속에서 기능하신다.
우리는 이것을 빌립보서 2:5–8에서 분명하게 본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 그리스도, 곧 삼위일체의 두 번째 위격이신 성자는 “하나님의 본체”이시며 “본질상 하나님”이시다. 다시 말해,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은 동등하게 하나님이시며 동일한 신적 본질을 공유하신다. 이 점에서 그들은 완전히 평등하시다.
그러나 본질상 동등하시면서도, 성자는 자발적으로 자신을 성부의 권위 아래 두셨다. 이러한 순종의 자세는 예수님의 지상 사역 전체에서 드러난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 (요한복음 14:31)
성부는 권위를 가지신 분이시며, 따라서 성자에게 명령하신다. 성자는 그 권위에 순종하시며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정확히 행하셨다. 심지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그것은 사랑에서 비롯된 순종이며,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려는 열정으로 드려진 순종이었다.
그렇다면 성부는 성자의 완전한 순종에 어떻게 응답하셨는가? 하나님은 그를 “지극히 높은 곳에” 높이셨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2:9–11)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에서 제자들에게 선언하신 말씀도 이 사실을 보여 준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태복음 28:18)
누가 예수님께 “모든 권세”를 주셨는가? 바로 성부 하나님이시다. 최고의 권위를 가지신 성부께서 성자에게 우주를 다스릴 권세를 맡기신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 역시 본질의 평등과 동시에 권위와 복종의 역할을 함께 가진 존재이다. 우리의 본질적 평등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또한 우리는 모두 죄로 인해 타락했으며, 모두 동일하게 구속과 용서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구원을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제공하신다.
인간 사이의 가장 기본적인 관계는 본질적인 평등의 관계이다. 본질적으로 우월하거나 열등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권위의 역할이나 질서 체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각자의 삶 속에서 때로는 권위를 행사하고, 동시에 다른 영역에서는 권위에 순종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의 위치와 역할이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는 인간이 모두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모두가 동일하게 가치 있으며, 동일하게 사랑받는 존재이다. 기독교 사상가 프란시스 쉐퍼가 말했듯이, “작은 사람은 없다.”
참된 권위는 올바르게 행사될 때 이 근본적인 진리를 인정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사랑받는 형상으로 존엄하게 대한다.
인간의 권위와 순종
하나님께서는 인간 사회 안에도 권위의 역할들을 세우셨다. 여기에는 결혼 안에서의 남편, 가정 안에서의 부모, 지역 교회의 장로들, 그리고 국가의 시민 권세가 포함된다. 또한 교실 안의 교사들, 회사나 조직 안의 정당한 권위자들도 여기에 속한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권위는 언제나 일시적이다. 부모는 자녀가 가정 안에서 자신들의 돌봄 아래 있는 동안에만 권위를 가진다. 직장에서 상사는 자신이 그 직책을 맡고 있는 동안에만 부하 직원들에 대한 권위를 가진다. 권위는 소수의 엘리트에게만 주어진 타고난 영구적 지위가 아니다. 그것은 일시적인 역할이며, 우리 모두가 어느 시점에는 맡게 되는 책임이다. 그러나 권위를 올바르게 행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배워야 하는 기술이자 책임이기도 하다.
순종 역시 올바르게 행하기 위해 배워야 하며, 성경은 이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친다.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할 뿐 아니라 정당한 인간 권위에도 순종해야 한다.
성경적인 참된 순종이란, 다른 사람의 정당한 권위 아래 자발적으로 자신을 두고, 기쁨으로 그의 인도를 따르며, 원망 없이 그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히브리서 13:17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성경에서 순종은 매우 귀한 가치로 여겨진다. 그것은 최고의 권위이신 하나님께 대한 순종뿐 아니라, 정당한 인간 권위에 대한 순종도 포함한다. 성경은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권면하며(에베소서 5:22–24), 자녀들에게는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하고(에베소서 6:1–3), 시민들에게는 국가 권세에 복종하라고 가르친다(로마서 13:1–7).
정당한 인간 권위에 대한 우리의 순종은 곧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행위이다. 왜냐하면 인간 권위 자체를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권위를 가진 자들 역시 그 권위를 어떻게 행사했는지 하나님께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1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물론 하나님께서 권위를 세우셨다고 해서 모든 권위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식으로 권위를 행사한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 자체를 거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그들 역시 자신이 권위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게 된다.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 하나님께로부터 권세를 부여받았지만, 그것을 올바르게 행사하지 못했다.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넘겼을 때 있었던 유명한 장면을 기억해 보라. 빌라도가 예수님께 질문했지만 예수님은 침묵하셨다. 그러자 빌라도가 말했다.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이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라.” (요한복음 19:10–11)
타락한 세상 속에서 권위자들이 종종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위를 남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부당하고 불법적인 권위에 대한 불복종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불복종은 예외적인 경우여야 하며, 신중한 기도와 분별 후에만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의 기본 자세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에베소서 5:21)는 말씀처럼, 정당한 인간 권위에 대한 존중과 순종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결국 모든 불의를 바로잡으실 것이며, 권위의 남용조차도 하나님의 때에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 안에서 우리는 안식할 수 있다.
순종은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특별히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자들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도록 격려하는 방식으로 순종이 행해질 때 더욱 그렇다. 오늘날에는 정당한 권위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 흔하다. 때로는 모든 권위 행사를 인간의 본질적 평등을 부정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무관심과 수동성 때문이며, 또 때로는 지배적인 여론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특별히 결혼 안에서 남편의 권위 문제에서 두드러진다. 오늘날 많은 문화는 이것을 “가부장제(patriarchy)”라고 부르며 억압의 형태로 악마화한다. 이러한 문화적 흐름에 거슬러 살아간다는 것은 강한 용기와, 비난과 오해를 감수하려는 태도를 요구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권위를 가진 사람이 기술이나 교육, 경험 면에서 더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하신 권위의 역할은 기술, 나이, 성격, 경험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설계에 따라 주어진 것이다. 정당한 권위에 대한 순종이 지혜롭고 온유하게 이루어질 때, 그것은 책임을 감당하기를 주저하는 권위자들이 점점 더 성숙하게 자라도록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의 순종은 인내와 온유함,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로 특징지어져야 하며, 권위를 가진 사람이 진리를 더 깊이 배우고 성숙해지도록 돕고자 하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
올바르게 행사되는 참된 순종은 비굴한 굴종이나 억압과는 전혀 다르다. 그것은 오히려 진정한 강함과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의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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