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의된 권위 (REDEFINED AUTHORITY)
하나님이 없는 권위는 모든 한계가 제거되고, 자기중심적인 목적을 위한 힘의 행사로 축소된다. 가장 큰 권력을 모을 수 있는 자들이 스스로를 절대 통치자, 심지어 최고의 권위를 대신하는 “신들”로 세운다. 이러한 거짓 권위의 정신은 역사 속 거대한 제국들—이집트,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에서부터 오늘날 북한과 중국, 러시와 왕정 국가와 독재국가들에 이르기까지 나타난다.
이와 같은 자의적이고 책임지지 않는 권력과 통제의 잘못된 권위는 거대한 제국의 왕들만이 아니라, 남편이 아내를 지배할 때, 부모가 자녀를 지배할 때, 직장의 상사가 부하 직원을 지배할 때에도 나타난다.
권위의 재정의
“자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종종 가혹하고 억압적인 힘과 통제의 사용.
하나님, 헌법적 제한, 혹은 권위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지지 않는 인간 정부나 통치.”
거짓 권위는 억압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권력과 통제를 행사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것은 아랫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것(마태복음 20:25)이며, 그 결과 사람들은 농노나 소작농, 혹은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전락한다.
J. R. R. 톨킨은 그의 위대한 서사시 『반지의 제왕』에서 이 거짓 권위를 “절대반지(one ring)”로 묘사했다. 그러한 권력은 그것을 소유한 자뿐 아니라 그 권위 아래 노예가 된 모든 사람까지 파괴한다. 기억에 남는 한 장면에서 프로도는 간달프에게 반지를 건네려 하지만, 간달프는 거절한다. 위대한 마법사는 이렇게 말한다.
“프로도, 명심하게. 나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이 반지를 사용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통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두려운 힘을 휘두르게 될 것이네.”
마찬가지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거짓 권위를 사용하면서도 “선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자신과 그 아래 있는 사람들을 모두 파괴한다. 거짓 권위는 단순히 힘의 행사일 뿐이며, 참된 권위의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요소들은 모두 제거된 상태이다. 거짓 권위에 남아 있는 유일한 요소는 명령과 규칙과 법을 제정하고, 위반에 대해 제재를 가할 수 있는 힘뿐이다. 그러나 무엇이 사라졌는지 생각해 보라.
사라진 것은 모든 권위의 궁극적 권위이자 근원이신 하나님이다. 또한 권위가 어떻게 올바르게 행사되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하나님의 본보기—권위 아래 있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한 희생적 섬김—도 사라졌다. 하나님-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본도 사라졌다. 그분은 자신을 배반할 자의 발까지 씻기셨다. 거짓 권위는 하나님의 성품이나 본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의 성품에 뿌리를 두고 있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와 권리—생명과 자유에 대한 권리—도 사라졌다. 거짓 권위는 인간을 본래적 존엄이나 가치나 권리가 없는 우연한 존재로 여긴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 이기심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권위는 자기 욕망을 위해 사용된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한 희생적 섬김이라는 요소는 사라진다.
거짓 권위는 두려움과 위협으로 유지되는 숨 막히는 통제 질서를 만들어 낸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들에게 주어진 본래적 자유의 권리를 거부한다. “질서 있는 자유(ordered liberty)”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사실 자유 자체의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타락한 권위가 행사되는 곳에서는 자유가 죽는다. 거짓 권위가 만들어 내는 질서는 결국 강제수용소의 질서이다.
평등과 권위 사이의 섬세한 균형도 사라진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동등한 존재로 여겨지지 않는다. 거짓 권위는 권력을 가진 자들을 본질적으로 우월한 존재로, 복종하는 자들을 본질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취급한다. 복종이라는 개념은 전적으로 부정적인 것이 된다. 거짓 권위가 너무 흔하기 때문에,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조차 교회와 결혼, 가정에서의 복종 개념을 거부한다.
또한 권위의 창조 질서적 위계도 사라진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은 더 이상 가장 위에 계시지 않으며, 심지어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거짓 권위는 인간, 특히 가장 큰 권력을 축적한 사람들—지배 엘리트나 영향력 있는 지도자들—을 가장 위에 둔다.
또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거짓 권위에는 참된 권위의 제한 장치들이 전혀 없다. 하나님이 정하신 권위의 영역(spheres of authority)이라는 개념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다. 그 결과, 개인이 스스로를 다스릴 권리나, 가정 안에서 부모의 권위, 교회 안에서 장로들의 권위는 점점 세속 정부 권력에 의해 침해되고 빼앗긴다. 세속 권력은 이러한 경쟁적 권위 영역들을 자신들의 절대 권력에 대한 위협으로 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제거된 권위에는 분산되거나 위임된 권위가 존재할 자리가 없다. 대신 권력은 중앙집권화되고, 위에서 아래로 강요되며, 폭군적으로 변한다. “권력의 반지”를 움켜쥐고 다른 사람들에게 복종을 강요할 수 있는 자가 곧 권위를 가지게 된다.
세계 곳곳의 거짓 권위 (FALSE AUTHORITY AROUND THE WORLD)
하나님께서는 창조 세계와 “마음에 새겨진 법”(로마서 2:15)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진리를 나타내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참된 권위와 그것이 어떻게 행사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의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비극적인 일반적 모습은 거짓 권위였다.
유교의 영향을 받은 중국, 일본, 한국과 같은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강한 권위 체계와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사회적 조화를 추구했던 공자(B.C. 551–479)는 다섯 가지 핵심 관계 속에 엄격한 위계질서를 발전시켰다. 곧 통치자와 신하,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 형과 아우, 그리고 친구와 친구의 관계이다. 공자는 심지어 우정 안에서도 조화를 유지하기 위해 위계질서가 존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권위를 가진 사람은 복종하는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해야 하며, 복종하는 사람은 권위자에게 존경과 경외심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고대 철학은 매우 질서 있는 사회를 세웠지만, 성경이 말하는 본질적 평등의 개념—곧 개인이 본래적으로 지닌 가치와 존엄,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와 자치의 권리—은 결여되어 있다. 유교의 영향을 받은 대부분의 문화에서는 개인의 가치가 크게 강조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와 자기 통치는 부족하다. 또한 권위자가 권위 아래 있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섬기는 종이라는 혁명적인 성경적 개념도 결여되어 있다. 많은 아시아 국가들에서 권위자들은 매우 통제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모습은 많은 아시아 교회들 안에서도 볼 수 있다. 일부 목회자들은 교인들의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을 통제하려고 한다. 또한 유교는 성경이 말하는 제한된 권위 영역(spheres of authority) 개념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권력이 다소 자의적이고 제한 없이 행사되는 결과를 낳는다.
더 전통적인 정령숭배 문화, 예를 들어 부족 공동체 문화에서는 권력이 자주 권위주의적이고 매우 통제적이며 자의적인 방식으로 행사된다. 모든 문화는 자신이 섬기는 신 또는 신들의 형상을 따라 형성된다. 고대 정령숭배 문화의 “신들”은 변덕스럽고 예측할 수 없으며 종종 복수심에 가득 차 있다. 이러한 특성들은 권위 행사 방식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질서 있는 자유의 부재와 더불어 다양한 사회적 기능 장애를 초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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