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세상을 치유하는 10가지 단어

6장 권위(Authority)-6

lamp365 2026. 5. 27. 17:10

 

서구의 거짓 권위

서구에서 권위가 어떻게 재정의되었는지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먼저 18세기 초부터 시작된 두 번의 중대한 세계관의 전환을 살펴보아야 한다. 어떤 문화의 중심에는 깊이 붙들고 있는 종교적 신념 체계인 “숭배(cult)”가 있다. 세계관의 전환은 한 “숭배 체계”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첫 번째 전환은 계몽주의 시대에 일어났는데,  “전근대주의(premodernism)”라고 부르는 것이 근대주의(modernism)에 의해 대체되었다. 전근대적 신념 체계는 우주를 초월하는 영적 실재를 인정한다. 그것들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신념 체계이며 지속적인 문명을 세워 왔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과 같은 위대한 유일신 종교들은 모두 전근대적이다. 궁극적 권위는 하나님과 그분이 계시하신 뜻에 있다.

그러나 근대주의는 하나님과 영적 세계를 제거하고, 현실을 오직 물질적 관점에서만 정의했다. 근대인에게 과학은 진리의 최종 심판자였다. 이제 과학 엘리트들이 하나님과 성경을 최고의 권위 자리에서 밀어냈다.

그 후 1900년대 중반부터 근대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에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현실의 근거를 하나님이나 물질 세계가 아니라 인간 자신, 곧 주권적이고 자율적인 개인 안에 둔다. 근대주의가 우리에게 목적 없는 물질 세계를 남겨두었다면, 포스트모던 사상가 프리드리히 니체는 현실 위에 자신의 의지를 용감하게 강요하는 “초인(Übermensch)”을 제시했다.

 

서구 세계관의 세 가지 중대한 전환

전근대주의 17세기 이전 영적 + 물질적 현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예: 십계명)
근대주의 18~20세기 물질만 존재 과학
포스트모더니즘 20세기~현재 인간의 정신 자율적이고 주권적인 자아

포스트모더니즘은 인간을 자율적이며 자기결정적인 존재로 본다. “자율적(autonomous)”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autos(자기)와 nomos(법)에서 유래했다. 자율적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이 법이 된다는 뜻이다. 우리의 포스트모던 세계에서는 주권적이고 자율적인 자아가 최고의 권위를 가진다.


사회적 혼란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한 문제가 있다. 만약 각 사람이 자기 자신(혹은 “zhe-self”)에게 법이라면, 사회는 어떤 기준으로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가? 우리가 각자 작은 신이 되어 버렸다면 누가 궁극적 권위를 가지는가?

현실의 근거를 자율적 개인에게 두는 포스트모더니즘은 결국 작동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의 성별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악의적인 증오가 소셜 미디어와 거리, 정치 속에 넘쳐나며, 화해할 수 없는 차이가 정상적인 상태가 된다.

권위를 자율적 개인에게 두는 포스트모더니즘 역시 지속 가능하지 않다. 사회는 반드시 질서를 가져야 하며, 그 질서는 결국 누군가의 현실관 위에 세워진 제도들에 의해 유지된다. 문제는 “누구의 현실관인가?”이다. 답은 이것이다. 자신의 관점을 다른 모든 사람에게 강요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의 현실관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급진적 자율성은 결국 강력한 엘리트 집단의 폭정으로 바뀌고 있다.

현재 이 새로운 엘리트가 강요하는 “현실”은 네오마르크스주의 비판이론에 기초하고 있다. 여기서는 피해자 지위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들이 최고의 권위를 부여받는다. 권력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정당화하고 유지하기 위해 이런 피해자들을 보호한다고 주장한다.

 

문화적 마르크스주의와 권위

네오마르크스주의 비판이론 세계관에서 권위는 지혜나 나이, 직위, 경험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 지위에 의해 부여된다. 억압과 피해에 대한 주관적인 “살아 있는 경험(lived experience)”은 의심 없이 믿어져야 한다.

피해자 집단에는 비백인, 여성, 그리고 소위 “성소수자” 혹은 LGBTQIA+ 공동체 구성원들이 포함된다. 피해자 범주에 더 많이 해당될수록 더 큰 도덕적 권위를 갖게 된다. 이것이 바로 “교차성(intersectionality)”이라 불리는 개념이다. 권위가 커질수록 권력도 커진다. (주: 상호교차성 또는 교차성은 성별, 젠더, 성정체성, 인종, 민족, 계급 따위의 정체성이 결합되었을 때 원래 없던 차별이나 특권이 생기는 경우를 말하는 개념이다. 흑인 여성주의에서 고안된 용어이지만, 인종 외에서도 다양한 곳에서 쓰이고 있다. 상호교차성 이론에 기반한 여성주의를 교차여성주의 또는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이라고 부른다.)

 

피해 집단에게 권력과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자연스럽게(그리고 왜곡된 방식으로) 피해자 지위에 대한 폭발적인 욕구를 만들어 낸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피해자 올림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람들은 점점 더 작은 “미세 공격(microaggressions)”까지 찾아내어 피해자임을 주장하려 한다.

 

권위는 권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 비판이론이 권력과 권위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도, 객관적 진리도, 초월적 도덕도 없는 세상에서는 결국 권력만 남게 된다. 이것이 마르크스주의 이념이 권력에 집착하는 이유다. 모든 것은 권력 역학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본다. 인간의 모든 상호작용 뒤에는 권력을 향한 욕망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권위와 권력에 대한 이러한 핵심 가정들은 “비판이론(critical theory)” 혹은 “불만 연구(grievance studies)”라고 불리는 포스트모던 학문 분야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네오마르크스주의 프랑크푸르트 학파 철학자들을 통해 영향력을 얻게 되었다.

 

구(舊)마르크스주의와 새로운 비판이론 모두의 핵심 신념은 권력과 권위는 오직 하나의 목적, 즉 힘이 덜한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권력은 제로섬 게임이다. 강자는 약자의 희생 위에서 특권을 누린다. 한 집단이 이기면 다른 집단은 반드시 져야 한다. 이 틀 안에서 역사는 권력과 지배의 끝없는 투쟁 이야기일 뿐이며, 각 집단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어떤 수단이든 사용하게 된다.

 

마르크스주의 비판이론은 역사적으로 권력이 백인 이성애 남성들에게 독점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백인우월주의, 가부장제, 자본주의, 그리고 전통적인 서구적 결혼·가정·성 개념과 같은 사회 시스템을 통해 권위를 유지해 왔다고 본다. 현대 “사회정의(social justice)” 혁명의 목표는 이러한 억압 구조를 해체하고 피해자들에게 권력과 권위를 이전하는 것이다. 피해자는 억압자가 패배할 때만 승리한다. 그것이 이 체계의 방식이다.

 

그렇다면 피해자에게 궁극적 권위가 있다고 보는 사회정의 개념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응답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이 타락한 세상 속에 불의와 억압의 피해자들이 많으며, 그들이 정의와 긍휼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피해자 지위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도덕적 권위를 부여하여 그들의 주관적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을 정의하게 해서는 안 된다.

 

마르크스주의 이념에는 권위의 한계나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 영역에 대한 존중 개념이 없다. 특히 그것은 가정 안의 권위를 경멸하며, 그것을 “가부장제”라는 이름으로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억압적 구조라고 비난한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많은 사람들을 대표하여 이렇게 말했다.

“가부장제는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폭력이나 폭력의 암묵적 위협을 필요로 한다.

여성에게 가장 위험한 상황은 거리의 낯선 남자나 전쟁의 적군이 아니라, 가정 안의 남편이나 연인이다.”

 

이러한 생각은 많은 복음주의 페미니스트들과 평등주의 옹호자들에게도 공유되고 있으며, 그중에는 영향력 있는 블로거 레이철 헬드 에반스도 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가부장제는 하나님이 세상을 위해 꿈꾸신 모습이 아니다. 그것을 계속 유지하는 사람들은 불의를 지속시키는 것이며,

그것은 결국 교회 내부와 세상 앞에서의 교회의 증언 모두를 해친다.”

 

문화적 마르크스주의 옹호자들과 마찬가지로, 헬드 에반스는 가정 안의 권위를 전적으로 부정적인 개념으로 묘사했다. 물론 학대적인 권위는 존재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권위를 비난하기보다 참된 권위와 거짓 권위를 분별해야 한다.

참된 권위가 신실하게 실천될 때, 그것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능력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주: “비판이론(critical theory)” 혹은 “불만 연구(grievance studies)”에 대해 다음의 유튜브채널에서 공부해 보기 바랍니다. 

https://youtu.be/cV0XSPbo1CY?si=DM2fxR_yxLEkC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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