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세상을 치유하는 10가지 단어

5장 자유(Freedom)-7

lamp365 2026. 5. 26. 12:25

자유의 재정의 (FREEDOM REDEFINED)

이전 세대들은 자유를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도덕법 아래에서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새롭게 재정의된 자유란 “방해나 제약 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이나 권리”를 의미한다.
이 정의는 인간이 더 이상 하나님의 창조 세계 안에 있으며 그분의 법 아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주권을 가진 자율적 개인이라는 가정 위에 세워져 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법이 되었다. 미국 연방대법관 앤서니 케네디는 1992년 Planned Parenthood v. Casey 판결의 다수 의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유의 핵심에는 존재의 의미와 우주의 의미, 그리고 인간 생명의 신비에 대한 자신의 개념을 스스로 정의할 권리가 있다."

우리는 흔히 재정의된 자유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는 말을 듣는다. "

자유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권리이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말은, 1973년 이후 미국에서만 6천3백만 명이 넘는 태아들이 자신들에게 그렇게 할 자유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 의해 죽임당한 사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그것은 태아를 “인격체가 아닌 존재(non-person)”로 재정의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결국 자유의 핵심에는 “인간 생명의 신비”를 포함하여 현실을 스스로 정의할 “권리”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1973년 Roe v. Wade 판결에서 해리 블랙먼 대법관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 

“수정헌법 제14조에서 사용된 ‘사람(person)’이라는 단어는 태아를 포함하지 않는다.”

 

만일 태아가 인간 인격체가 아니라면,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제거할 수 있게 된다. 얼마나 편리한가?

 

자유의 세속화

자유의 세속화는 계몽주의 시대(약 1620~1781)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대에 서구 문명은 철학적으로 분열되기 시작했고, 그 분열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 핵심 쟁점은 하나님, 창조, 그리고 인간 본성에 관한 것이었다.

이 거대한 분열의 양측 모두 “자유”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그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한쪽은 하나님이 존재하시며,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 제한 속에 있을 때 가장 번성한다고 믿는다. 여기에서 자유는 경계 안에 존재한다. 그 경계 안에서 우리는 번영한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제한 자체를 견딜 수 없는 것으로 여긴다. 크리스토퍼 루포는 이렇게 설명한다.

“ 세속적 좌파 철학의 핵심 정신은 제한에 대한 거부이다.”

현대 트랜스젠더 운동은 이러한 제한 거부의 대표적 사례라고 그는 말한다.

"인간은 인간의 성(sexuality)을 포함하는 고정된 본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 본성에는 이념이나 수술로 넘어설 수 없는 본질적 한계가 있다. 인간 본성을 초월하려는 시도는 결국 인간 파괴로 끝난다."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

이 분열은 18세기의 가장 중요한 두 혁명, 곧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1776년 미국 혁명가들은 기독교 도덕을 인간 자유와 인권의 기초로 여겼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의 보장을 위해 정부와 권력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1789년 프랑스 혁명은 달랐다. 프랑스 혁명가들은 격렬하게 반기독교적이었다. 그들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을 모독하면서 “이성 숭배(Cult of Reason)”를 세웠고, 결국 나폴레옹 독재의 길을 열었다.

더 나아가, 그들의 세속적 자유 개념은 20세기의 가장 피비린내 나는 폭정들—러시아,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에 영향을 주었다.

영국 수필가 폴 킹스노스는 이렇게 말했다.

" 자유는 하나님에게서 비롯된다는 생각을 멸시하는 사람들에 의해 주로 파괴되고 있다. 하나님이 자유로부터 분리되는 곳에서는, 자유는 결국 시들어 버린다. 유럽에서 기독교가 죽었을 때, 그 자리는 파시즘, 나치즘, 공산주의가 대신했다."

 

21세기의 자유에 대한 위협

오늘날 자유와 자유 국가들은 심각한 위협 아래 있다.

공산주의와 파시즘은 모두 무신론적 세계관 위에 세워져 있다. 그들은 하나님도 없고 인간이 책임져야 할 더 높은 법도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다윈주의 인간 기원론을 받아들인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부여하신 생명권이나 자유권이 없게 된다. 인간은 단지 고도로 진화된 동물일 뿐이다. 결국 적용되는 유일한 “법”은 적자생존이며, 힘이 곧 정의가 된다.

조던 피터슨과 인도 철학자 비샬 망갈와디의 대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

망갈와디: 만약 다윈주의가 말하듯 여성이 단지 동물이라면, 내가 소를 사서 묶어 두고 팔 수 있듯이 왜 어린 소녀를 사고 가두고 팔 수 없는가? 소녀는 동물과 다른 존재인가?

피터슨:  힘만이 실제적 힘이라면, 힘 있는 사람은 인간도 사고팔 수 있다.

망갈와디: 오직 소녀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로서 양도할 수 없는 자유의 권리를 가질 때만,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와 자유

공산주의를 떠받치는 이념은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주의 혁명가인 칼 마르크스에 의해 발전되었다. 그의 출발점은 앞에서 설명한 동일한 무신론적 세계관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하면서도 모순적인 차이가 있었다. 그는 선과 악이라는 범주, 그리고 모든 악이 제거된 세상을 이루려는 유토피아적 비전을 전제함으로써, 유대-기독교적 도덕 질서를 차용하고 왜곡하였다. 이러한 도덕적 비전은 마르크스주의를 엄격한 무신론적 유물론과 구별시키며, 또한 그 끔찍하고 피비린내 나는 역사적 기록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가 지속적인 매력과 놀라운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마르크스의 세계관에서 악은 주로 자본주의에 뿌리를 둔 불의한 사회 체제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불평등으로 정의된다. 그가 추구한 “정의”를 위한 투쟁은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혁명적 방식 그대로, 자본가들은 대거 체포되고 투옥되었으며 수백만 명이 살해당했고, 그들의 재산과 부는 재분배되었다.

마르크스에게 “천국”은 완전한 사회적·물질적 평등이 이루어진 이 세상의 유토피아였다. 결과의 평등(equality of outcome)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 모든 이념은 본질적으로 반(反)자유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강압적이며 종종 폭력적인 위로부터의 사회 공학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자유 국가에서는 사람들의 선택이 존중되며, 그 선택들이 서로 다른 결과를 낳는 것도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마르크스에게 서로 다른 결과 자체가 곧 악이었다. 마르크스주의 원리 위에 세워진 국가들, 곧 러시아와 중국 같은 나라들은 제국주의적 야망을 가진 피비린내 나는 폭정으로 변질되었고, 다른 민족들을 억압해 온 역사를 남겼다. 

 

1990년 소비에트 공산주의의 붕괴 이후, 마르크스주의는 서구에서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두 가지 반자유 운동으로 변형되고 진화하였다. 그중 하나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WEF)이라는 이름 아래 결집한 글로벌 기업, 거대 기술 기업, 정부 엘리트 집단이다. 이러한 세계주의 엘리트들과 금권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막대한 부와 권력 네트워크가 세상(그리고 기후)을 사회적으로 설계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유토피아적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우월한 지혜와 도덕성을 제공한다고 믿는다.

그들이 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추진하는 계획은 “The Great Reset(위대한 재설정)”이라 불린다. 이것은 행정적·기술관료적 시스템과 구조를 활용하여 전 세계 인구를 조작하고 강제하며 통제하려는 계획으로, 그들 자신의 권력과 막대한 부를 유지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의존적인 농노 상태로 만들려는 구상이다. 그들의 체제 안에는 개인의 정치적·경제적 자유가 설 자리가 없다. 오히려 “위대한 재설정(The Great Reset)”은 중앙집권적으로 관리되는 세계 체제를 향한 추진이다. 그것은 개인을 세계 공동체의 집단적 의지에 종속시키는 체제이며, 그 집단적 의지를 자신들이 대변한다고 주장한다.

 

WEF는 미국, 독일, 캐나다, 중국과 같은 강대국의 고위 정부 지도자들뿐 아니라 Amazon, Apple, Boeing, Facebook, Goldman Sachs, IBM, Mastercard, Microsoft, Visa, Walmart 등 거대 기업들의 CEO들까지 포함하는 막강한 네트워크이다.

정치학자 Mark Mitchell에 따르면, “이것은 역사상 평화시기에 추진된 어떤 계획보다도 강력한 권력 집중을 의미한다. 미국에서 중국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가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기업들과 힘을 합친다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은 거의 저항할 수 없는 수준이 될 것이다.”

 

자유에 대한 두 번째이자 밀접하게 연관된 위협은 1950년대 이후 서구 대학들에서 발전해 온 마르크스주의적 비판 이론 연구에 뿌리를 둔 “워크(woke)” 사회정의 이념에서 나온다. 모든 마르크스주의 영향을 받은 이념들처럼, 이 이념 역시 자유와 양립할 수 없다.

이 이념은 세상을 강력한 억압자들이 지배하는 구조로 본다. 이 억압자들은 자유시장 자본주의, 미국의 헌법적 정부 체제, 백인(whiteness), 가부장제, 그리고 성경적 성 윤리와 같은 사회적·문화적 체제를 세운 존재들로 간주된다. 이러한 “억압자들”은 피해 집단들의 삶의 결과를 결정한다고 여겨지며, 이 틀 안에서 피해 집단은 주로 “유색인종,” 동성애자,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그리고 LGBTQIA+ 공동체에 속한 다른 성적 지향과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로 정의된다. 

다윈주의 세계관에서는 인간의 행동이 생물학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워크” 세계관에서도 마찬가지로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데, 인간의 행동이 사회적으로 결정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의 선택은 진정으로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강력한 사회적 힘과 체제에 의해 결정된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소위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선택이 초래한 결과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본다.

“워크” 세계관의 옹호자들은 자유라는 개념 자체를 비웃으며, 그것을 백인·유럽·기독교 억압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미 폐기된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이 세계관이 자리 잡는 곳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포함한 여러 자유들이 급격히 제한된다. 그 대신 침묵 강요, 검열, 심지어 강제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Black Lives Matter (BLM)운동의 세 젊은 공동 설립자들과 같이, “워크” 세계관의 가장 영향력 있고 적극적인 옹호자들은 자신들을 공개적으로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밝히며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거대한 악의 근원으로 본다. 아마도 “워크” 이념의 대표적 대변인이라 할 수 있는 Ibram X. Kendi“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인종차별적이며, 인종차별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적이다”라고 말했다.

 

흥미롭게도, 자유시장 자본주의에 대한 강한 반감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워크(wokeness)”의 옹호자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기업들, 곧 World Economic Forum(WEF)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기업들과 손을 잡았다. 정치학자 Mark Mitchell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양측의 지도자들은 이 겉보기에 기묘한 동맹을 통해 큰 이익을 얻는다. ‘워크 기업들’은 자신들이 ‘사회 정의’를 지지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도덕적 정당성을 얻고, 사회주의 지도자들은 부와 지위, 그리고 권력을 얻게 된다.”

 

기독교는 자유로운 개인들과 자유로운 국가들을 탄생시킨 본질적인 진리들을 인정해 왔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진리들이 거부될 때 자유가 지속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거대한 사회 실험 속에 살고 있다. 기독교 수필가 Rod Dreher에 따르면, 그 대답은 부정적인 것처럼 보인다.

오늘날의 타락하고 “워크(Woke)”화된 서구 세계관은 자유와 양립할 수 없다. 그것은 자유의 황금 삼각형(Golden Triangle of Freedom)을 무너뜨린다. 미덕(virtue)을 “기분만 좋으면 무엇이든 하라”는 가치관으로 대체하고, 절제(self-control)를 자기 방종(self-indulgence)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의 황금 삼각형 안에서 미덕의 기초를 제공하던 유대-기독교 신앙은 “워크” 신(新)마르크스주의 종교로 대체된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육체와 욕망과 정욕에 점점 더 얽매이게 되었고, 동시에 우울증, 정신 질환, 자살이 전례 없이 증가하고 있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약물 중독의 폭증, 치솟는 범죄율, 가정의 붕괴, 그리고 점점 심화되는 사회적 혼란이 나타나고 있다. 사회를 지탱하던 구조 자체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중심에 자리한 반(反)기독교적 세계관은 자유 사회를 유지할 능력이 없다. 사회적 혼란과 무정부 상태, 그리고 전체주의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많은 면에서 이미 현실이 되었다.

우리는 지금 실시간으로, 시민들이 덕 있는 자기 통치(virtuous self-government)를 할 수 있을 때만 자유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목격하고 있다. 미국 하원의장을 지냈고 John Winthrop의 후손인 Robert Charles Winthrop(1809–1884)는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말했다.

“한마디로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힘에 의해서든, 자기 밖에 있는 힘에 의해서든 반드시 통제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든, 인간의 강한 팔에 의해서든; 성경에 의해서든, 총검에 의해서든 말이다.”

 

자유는 오직 내면에서부터 세워지는 질서, 곧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도덕적 기준에 기초한 “절제(self-control)”를 통해서만 회복될 수 있다. 그것이 가능할까? 때는 늦어가고 있지만, 아직 희망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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