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에 나타난 자유의 이야기
바벨론 포로 생활의 가장 어두운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에스겔을 통해 택하신 백성을 위로하셨다.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그들을 자유롭게 하실 날이 올 것을 약속하셨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들의 근본 문제, 곧 타락하고 죄된 마음 때문에 율법을 지킬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심으로 그들이 계속 자유 안에 머물도록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자기 스스로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그들이 새롭게 변화되어야 했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영이 반드시 필요했다.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서 데려오고 모든 나라에서 모아 너희 고국 땅으로 들어가게 하겠다. 내가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 너희를 깨끗하게 하겠다. 너희 모든 더러운 것과 모든 우상에게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또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고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겠다. 너희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 같은 마음을 주겠다. 또 내 영을 너희 안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따르게 하고 내 법도를 잘 지키게 하겠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 살게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며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될 것이다.” (에스겔 36:24-28)
여기에 우리의 딜레마가 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자유는 지속될 수 없다. 그러나 타락하고 죄된 우리의 본성 때문에 우리는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가 없다. 그 결과 우리는 죄와 사탄의 노예로 남아 있게 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 속에서 이 딜레마를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 선을 행하고자 하는 소원은 있으나 그것을 행하지 못하노라.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악을 행하는도다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로마서 7:14, 18-19, 24)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바울의 고백에 공감할 수 있다. 우리는 각종 중독과 욕망과 강박에 사로잡힌 경험이 있다. 또한 미움과 쓴 감정에 붙들려 그것들이 우리를 지배하고, 우리 삶과 관계를 파괴하는 것을 본다. 우리는 그 힘에서 벗어나 자유롭기를 깊이 원하지만,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사탄의 지배 아래 있으며, 그에게 종노릇하고 결국 파멸을 향해 가고 있다. 이 내적인 속박에서 자유롭게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자유로운 사람이나 자유 사회의 시민이 될 수 없다. 영적이고 내적인 자유가 모든 다른 자유의 기초다.
누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요? 누가 이 딜레마에서 벗어날 길을 열어 줄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이루기 위해 아들을 보내셨다. 구약성경의 노예 상태에서 자유로 나아가는 모든 이야기는 미래에 있을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구원의 예표였다. 그 예표는 2천 년 전 예수님의 오심으로 이루어졌다. 예수님은 자신이 오래 기다려온 해방자라고 선포하셨다.
“ 예수께서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선포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다’ 하시니라.” (누가복음 4:16-21)
예수님께서 자유롭게 하러 오신 억눌린 자들과 눈먼 포로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모두이다. 예수님은 가장 깊고 참된 의미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기 위해 오신 위대한 해방자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분으로서 완전한 자유의 삶을 사셨다. 아무도 그분의 의지에 반하여 무엇인가를 강요할 수 없었다. 그분이 하신 모든 일은 자발적인 것이었고, 로마의 십자가에서 끔찍한 죽음을 당하시는 것까지도 그러했다.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요한복음 10:17-18)
이것이 자유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다른 사람의 선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감옥에 갇히고, 심지어 죽음까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이것은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유와는 얼마나 다른 모습인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은 어떻게 우리의 자유를 이루었을까?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십자가가 우리의 가장 깊은 자유를 어떻게 보장했는지 설명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너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음이라 …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었던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죄를 정하사.” (로마서 8:1-3)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 죄에게 종 되었던 너희가 …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로마서 6:6-7; 17-18)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이며 그분의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더 이상 사탄의 노예가 아니다. 우리의 영혼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신 바 되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새 생명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 또한 옛 죄된 본성에 대하여 죽고 새롭게 되었다. 우리는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영을 받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분을 기쁘시게 할 능력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요한의 유명한 말씀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덕스럽고 자기 절제하는 삶을 살 힘을 주셨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요한복음 8:36)
우리는 자유 민주 사회 속에서 시민적·정치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영적으로 자유롭지 않다면 여전히 노예인 것이다. 반대로, 외적으로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고 자유를 빼앗긴다 해도 내적으로 자유롭다면 우리는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이며, 아무도 그 자유를 빼앗을 수 없다.
이제 하나님의 자유로운 자녀로서 우리는 또 하나의 선택 앞에 서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 그리스도께서 값 주고 사신 자유 안에 살 수도 있고,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 욕망과 정욕을 따라 살아감으로 다시 노예 상태로 돌아갈 수도 있다. 이것은 모세가 신명기에서 이스라엘 백성 앞에 두었던 선택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신약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 5:1)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갈라디아서 5:13)
“너희는 자유 있는 자 같이 하되 그 자유를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베드로전서 2:16)
이러한 신약의 말씀들을 묵상하며, 위대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 위에 있는 가장 자유로운 주인이며 아무에게도 복종하지 않는다.
동시에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을 섬기는 가장 충실한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복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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