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세상을 치유하는 10가지 단어

5장 자유(Freedom)-3

lamp365 2026. 5. 24. 17:01

자유롭게 창조된 인간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로봇처럼 창조하지 않으셨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자유를 남용하는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께 많은 아픔을 덜어드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자유롭다. 하나님이 자유로우시기 때문이다.

 

자유와 사랑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 안에서 인격적으로 하나님과 관계 맺도록 창조하셨다. 그런데 사랑은 본질적으로 자유롭게 선택되어야 한다. 사랑은 강요되거나 조종될 수 없다. 선택이 없다면 사랑도 존재할 수 없다.

 

자유와 다스림과 창조성

하나님은 왕으로서 창조 세계를 다스리시며, 우리를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대리 통치자로 세우셨다. 더 큰 권위에는 더 큰 자유가 따른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권위를 주셨다. 우리는 자신을 다스리고 창조세계를 다스리도록 부름받았다. 자유는 이 두 사명을 위해 필수적이다.

하나님은 혼돈과 어둠 가운데 질서와 생명과 아름다움을 가져오셨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로서 우리 역시 창조 세계 안에 더 큰 질서와 아름다움과 혁신을 이루도록 부름받았다. 자유는 이러한 사명에도 필수적이다. 자유는 우리가 꿈꾸고 상상하고 창조하고 혁신하며 건설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기업을 세우고 유용한 제품을 발명하며 아름다운 건축물과 제도를 만드는 일들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그래서 더 큰 개인의 자유를 허용하는 정치·경제 체제는 더 많은 혁신과 자원과 부를 만들어 낸다.

 

자유는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권리

우리가 가진 자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독립선언문 안에서 이 진리를 인정했다.

“우리는 다음의 진리들을 자명한 것으로 여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그 가운데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추구권이 포함된다.”

 

모든 사람은 자유롭게 창조되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든 혹은 어떤 정부든 그들을 노예로 삼을 권리는 없다. 그들이 아무리 무력하고, 교육받지 못했고, 연약하고, 가난하다 할지라도 마찬가지이다. 노예 소유자였던 제퍼슨조차 이렇게 인정했다.

“대다수의 인간은 등에 안장을 얹고 태어나지 않았다. 또한 소수의 특권층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이름으로 그들 위에 올라타
합법적으로 지배하도록 태어난 것도 아니다.”

 

세상의 폭군들은 이 사상을 무엇보다 두려워하며, 백성들이 이 진리를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레이엄 시어러의 말처럼, 거의 모든 일을 한다. 

“가이사 외에 또 다른 왕이 있다는 고대 기독교의 통찰은 자유의 시작이었다.”

에덴동산 안의 자유

이제 창세기부터 시작하여 성경 속 자유의 이야기를 간단히 살펴보자.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창세기 2:8–9, 15–17)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하신 말씀을 주의 깊게 보라.

“너희는 자유롭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드셨다. 이것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피조물인 우리의 자유는 무한하지 않다. 자유는 정해진 한계 안에서 허용이 된다. 여기서 그 한계를 본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동산의 모든 나무 열매를 먹을 자유를 주셨지만 단 하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만은 금하셨다.

 

 

기독교 사상가 브래드포드 리틀존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 본성은 한계 안에서 형성되며, 참된 자유는 그러한 한계를 초월하려는 상상이 아니라 그것을 인정하는 데서 발견된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통해 에덴동산 안에 한계를 세우셨고, 아담과 하와가 살며 자유롭게 남기를 원한다면 그 열매를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은 명령하셨지만 강제로 복종시키지는 않으셨다. 대신 그들이 순종할 수도 있고 불순종할 수도 있는 자유를 허락하셨고, 그 결과를 감당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을 자유로운 인간으로 대하셨다.

여기서 이야기 속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게 만든 뱀이다.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세기 3:1–4)

 

이것이 시대를 거쳐 내려오는 “큰 거짓말”이다. 사람들은 한계도 책임도 없는 자유를 갈망한다. 그러나 피조물에게 무한한 자유란 환상일 뿐이며 사탄은 그것을 알고 있다.

우리의 첫 조상들이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하나님의 나라에서 사탄의 나라에 포로가 되었다. 자유는 하나님의 나라의 중요한 특징이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다”(고린도후서 3:17). 그러나 사탄의 어두운 영역에는 자유가 없고 오직 속박만 있다.

우리의 첫 조상들은 어리석게도 자유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한계를 넘어섰고, 그 결과 사탄의 종이 되었다. 그리고 그 속박은 이후 모든 세대에게 전해졌다. 사도 바울은 그 끔찍한 결과를 이렇게 묘사한다.

“그들은 모든 불의, 악, 탐욕, 악독이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의가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로마서 1:29–32)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회는 오래 자유를 유지할 수 없다. 결국 스스로 무너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사탄이 원하는 것이다. 창조주께 반역함으로 우리는 사탄의 노예가 되었고, 우리와 세상 나라들은 그의 악한 계획에 사로잡혀 속박과 파멸로 끌려가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끔찍한 속박에서 해방되어 다시 자유를 회복할 희망이 있는가? 있다. 그러나 우리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우리를 붙잡은 자는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강력한 구원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비 가운데 바로 그 구원자를 보내주셨다.

이 구원의 이야기는 인류 역사 전체를 아우르는 가장 위대한 이야기이다. 창세기 3장에서 시작되어 요한계시록 21–22장에서 완성된다. 이 이야기의 절정은 위대한 해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이다. 그분은 세상의 구주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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