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세상을 치유하는 10가지 단어

4장 결혼(Marriage)-1

lamp365 2026. 5. 21. 11:22

“창조의 시작부터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마태복음 19:4–6

 

결혼(MARRIAGE)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포괄적이고, 배타적이며, 영구적인 연합으로서 남자와 여자를 남편과 아내로 하나 되게 하며,

그들의 연합을 통해 태어나는 자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르면서도

상호보완적이라는 인간학적 진리, 생식은 남자와 여자에게 의존한다는 생물학적 사실,

그리고 자녀에게는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현실에 기초한다.

 

재정의된 결혼(MARRIAGE REDEFINED)

함께 살아가며 성적·가정적 동반자가 되기를 의도하는 성인들 사이의 법적으로 인정된 낭만적 돌봄 관계.

 

결혼 제도에 대한 수많은 도전 속에서, 스칸디나비아 출신의 한 젊은 부부는 세상이 잊어버린 결혼의 참된 의미를 선포하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제작의 일환으로, 이 부부는 가톨릭 작가이자 수필가인 메리 에버스타트(Mary Eberstadt)를 인터뷰하기로 했다. 그들은 인터뷰를 위해 워싱턴 D.C.까지 날아갔다. 에버스타트는 그 만남을 이렇게 회상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제작 중인 다큐멘터리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내게 연락해 왔다. … 워싱턴 D.C.의 그들의 스튜디오는 알고 보니 그들이 묵고 있던 호텔방이었다. 촬영팀에는 아주 어린 세 자녀도 함께 있었는데, 인터뷰 내내 번갈아 가며 아이들을 돌보았다. 그들은 진실을 알리기 위한 사명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희생을 감수하며 수백 마일을 여행했다고 말했다.

그 젊은 여성은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 채 성장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급진적 페미니스트였고, 그녀를 남성을 두려워하고 미워하도록 키웠다. 그 젊은 남성은 스칸디나비아 사람들 가운데서도 매우 세속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만약 그들이 더 이른 시기에 분류되었다면, 둘 다 ‘무종교인(nones)’으로 분류 되었을 것이다.

그들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그들은 성혁명의 적진 뒤편에서 탈출해 나온 사람들이었다. 어떻게든 그들은 서로를 만나게 되었고 사랑에 빠지면서 자신의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질문하게 되었다.  그들은 한 신부(priest)를 만나 복음을 듣게 되었고 신실한 저자들의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여러 뜻밖의 사건들이 이어진 끝에 결국 두 사람 모두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이 어렵게 발견한 진리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자 한다.”

 

이전에 세속적이었던 이 스칸디나비아 출신의 부부는 결혼과 성, 그리고 가족에 관한 숭고한 진리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들이 잊혀진 이 지혜를 발견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결혼의 위대한 창시자이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만남을 경험했다.

이 지혜는 부모의 본이나 세속적 스칸디나비아 문화의 사상과 가치관을 통해 온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만남들을 통해 초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삶을 변화시켰고,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결혼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그 복된 소식을 이웃과 공동체와 세상에 전하기로 결심한 남은 자(remnant)를 일으키고 계신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 중 하나이며, 독특하게 생명을 주고, 세대를 이어가며, 문화를 형성하고, 문명을 세우는 제도이다. 번영하는 사회는 건강한 가정 위에 세워지고, 건강한 가정은 견고한 결혼 위에 세워진다. 결혼은 문자 그대로 사회라는 몸의 세포와 같다. 그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사회 전체가 번성할지 쇠퇴할지를 결정한다.

물론 독신 역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이다. 어떤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서 그러하셨듯 독신을 중요한 방식으로 사용하신다. 위대한 감독이자 저술가이며 신학자였던 히포의 어거스틴 역시 그러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에게 결혼은 거의 모든 것보다 더 깊이 우리의 삶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비극적이게도, 이 오래된 제도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하려는 전례 없는 도덕 혁명이 100년이 넘도록 진행되어 왔다. 서구에서는 적어도 두 세대가 결혼이 실제로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도 모른 채 성장했다. 결혼에 대한 이러한 지혜의 상실은 개인의 삶뿐 아니라 국가 전체를 황폐하게 만들었다.

 

결혼의 정의(MARRIAGE DEFINED)

결혼은 인간이 만들어낸 발명품이 아니다. 그것은 우연한 진화 과정의 결과도 아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아이디어이며, 하나님의 행하심이고, 하나님께서 정의하시는 것이다. 사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최초이자 가장 기본적인 사회 제도이다. 의미심장하게도 하나님은 타락 이전에 결혼을 만드셨다.

결혼은 단지 두 사람 사이의 법적으로 인정된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남편과 아내로 하나 되게 하시는 신비롭고 거룩한 평생의 연합이다. 목사나 신부가 결혼식을 집례할 수는 있지만, 남편과 아내를 실제로 하나로 묶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가복음 10:9).

결혼은 창조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설계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에 핵심적인 요소이다. 실제로 결혼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성경은 창세기 1–2장에서 첫 부부인 아담과 하와의 결혼으로 시작하며, 요한계시록 19장에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혼인으로 끝난다. 이 두 책갈피 사이에서 성경은 결혼의 이미지와 남편과 아내의 언어로 가득 차 있다. 칼 슈테른(Karl Stern)은 심지어 “존재하는 모든 것은 혼인적(all being is nuptial)”이라고까지 말했다.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의 결혼(창세기 2:18–24)은 타락 이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모든 문화와 모든 시대의 결혼을 위한 원형(template)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결혼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배타적 연합임을 본다.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사람과 동물, 한 남자와 여러 여자, 혹은 그 밖의 어떤 조합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동성 “결혼”은 배제된다. 또한 아담이 동물들 가운데서 “돕는 배필”(창세기 2:20)을 찾을 수 없었기에 수간도 배제된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위해 단 한 명의 여자를 만드셨기 때문에 일부다처제도 배제되며 일부일처제의 원리가 세워진다.

 

결혼(MARRIAGE)

결혼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포괄적이고 배타적이며 영속적인 연합으로서, 남자와 여자를 남편과 아내로 하나 되게 하며,

그들의 연합을 통해 태어나는 자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게 한다. 이것은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르면서도 상호보완적이라는

인간학적 진리, 생식이 남자와 여자에게 달려 있다는 생물학적 사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필요하다는

사회적 현실에 기초한다.

 

 

결혼은 하나님의 본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창조 이전부터 성부·성자·성령 하나님 안에는 공동체와 교제와 소통이 존재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셨을 때, 이 신적 관계 공동체를 반영하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관계 속에서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창세기 1:31에서 자신의 창조를 “심히 좋다”고 선언하셨지만, 한 가지 중요한 예외가 있었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창세기 2:18).

 

하나님 안의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는 사랑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우리 또한 사랑하도록, 그리고 사랑받도록 지음받았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자기중심적이 아니라 타인 중심적인 결혼 안에서 특별히 드러난다.

이것은 서구 문화가 결혼을 정의하는 급진적 자율성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오늘날 결혼은 “우리”가 아니라 “나”에 관한 것이 되었다. 다른 사람을 섬기기보다 자신을 섬기는 것이 되었다. 개인적 책임 없는 개인적 자유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하나님이 의도하신 결혼은 그 반대이다. 그것은 성부·성자·성령 사이에 존재하는 서로를 섬기는 사랑을 반영한다. 결혼 안에서 남편과 아내는, 비록 작게나마, 이 기쁘고 초월적인 사랑을 세상 앞에 드러내는 말할 수 없는 특권을 가진다.

 

이 사랑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하나님 안에는 획일성 없는 연합과 우열 없는 다양성이 존재한다. 성부·성자·성령은 신비롭게도 “하나”(신명기 6:4)이시지만 동시에 구별되며 상호보완적이다. 사람 역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이러한 연합과 다양성은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결혼 안에서 남편과 아내는 “한 몸”(창세기 2:24)으로 깊이 연합하지만 여전히 서로 다른 존재로 남는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 안에는 획일성 없는 연합과 우열 없는 다양성이 존재한다.

더 나아가기 전에, 결혼은 동일성(uniformity)이 아니라 상응성(correspondence)에 관한 것임을 주목하자. 상응성은 적합성과 상호보완성과 같은 의미다. 예를 들면 자물쇠의 두 부분, 단추와 단춧구멍, 안전벨트의 양쪽 끝과 같다. 차이는 존재하지만 더 큰 목적을 위해 서로 맞아떨어지고 보완한다. 이것은 남성과 여성에게 해당되며, 특히 남편과 아내에게 더욱 그렇다. 반대로 동일성은 획일성과 대체 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거울상처럼 동일한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귀걸이 한 쌍, 장갑 한 쌍, 신발 한 쌍, 두 남자 혹은 두 여자와 같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서로 상응하고 보완하도록 창조하셨다. 거기에는 연합이 있다. 남성과 여성 모두 인간이며, 하나님께 동일하게 사랑받고 가치 있는 존재이다. 또한 둘 다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데 똑같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그 역할은 서로 다르다. 우리는 이전 장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의 깊은 차이들을 살펴보았다. 결혼 안에서는 남편과 아내의 역할에도 상응하는 차이가 존재한다.

 

구약에서 남편을 뜻하는 단어는 “이쉬”(ishi)이다. 이것은 희생적이며 타인을 섬기는 권위를 의미하며, 주도함과 보호와 공급을 포함한다. 문화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남편됨의 의미를 정의하신다. 성경은 하나님을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남편으로 묘사하며(이사야 54:5, 호세아서), 또한 그리스도를 그의 신부인 교회의 남편으로 묘사한다(에베소서 5:25–33). 하나님은 원형적 남편이시다.

우리는 시편 23편에서 이것을 본다.

하나님은 인도하신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하나님은 공급하신다.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나님은 보호하신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성경에서 남편의 권위는 결코 아내나 자녀보다 우월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권위, 곧 머리됨은 책임을 기꺼이 짊어지고, 자신의 권위 아래 있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려는 자세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남편은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궁극적인 책임을 진다. 그는 자신의 특권을 내려놓고 아내와 자녀의 필요를 돌보며, 심지어 자신의 생명까지 희생하는 섬김을 해야 한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에베소서 5:25).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은 아담의 아내를 “에제르”(ezer), 즉 “돕는 자”라고 부르신다. 창세기 2:18에서 하나님은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말씀하셨다. 만일 하나님이 원형적 남편이시라면, 동시에 원형적 돕는 자이시기도 하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편 121:1–2).

이러한 도움은 약함이나 열등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결코 그렇지 않다. 결혼 안에서 남편은 도움을 필요로 하고, 아내는 그것을 제공한다. 이것이 진정한 상호보완성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도움인가? 그 답은 창세기 1:28에 나타난 인간에게 주어진 최초의 사명 속에 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이 사명은 남성과 여성 “그들”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하위 명령이 있다. (1)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는 것, (2) 창조세계를 다스리고 관리하는 것이다. 두 사명 모두 가정에서 시작된다.

 

결혼은 다른 어떤 관계와도 다르다. 왜냐하면 그것은 출산, 자녀 양육, 가정과 공동체와 문화와 국가의 형성을 독특하게 포함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남편과 아내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인간 생명을 창조하시는 것보다 더 신비롭고 아름다운 일은 없다. 그 생명은 복잡하고 정교하게 설계된 독특한 존재이며, 불멸의 영혼과 정신과 의지를 가지고, 헤아릴 수 없는 가치와 가능성을 지닌다. 이런 사람들로 땅을 채우는 것은 결혼 안에 담긴 하나님의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이다.

바르게 이해된 결혼은 성적 친밀함을 위한 유일하게 합당한 환경이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새 생명의 열매를 맺도록 설계하셨기 때문이다. 이 놀랍고 거룩한 생식의 능력이 올바르게 사용될 수 있는 곳은 단 하나, 곧 평생 지속되는 결혼 언약 안이다. 결혼은 성, 출산, 자녀 양육을 하나의 생명을 주는 문화 창조적 모자이크로 연결한다. 그것은 남편과 아내를 서로 묶고, 또한 그들의 연합에서 태어난 자녀와 연결하며, 궁극적으로 인류의 미래와 연결한다.

 

이 모든 것은 결혼이 생물학적 자녀를 낳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사실이다. 나다나엘 블레이크는 “결혼의 충만함은 본래 자녀를 향해 열려 있는 남자와 여자의 연합 안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고 말한다. 나이나 병 때문에 어떤 부부들이 자녀를 가질 수 없다고 해서 이것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불임은 결혼의 완전한 가능성이 감소된 것으로 슬퍼해야 할 상실이다.

그러나 단지 자녀를 낳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나님은 “경건한 후손”을 원하신다. 말라기 2:15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보여준다. “하나님이 그들로 하나가 되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셨느냐? 경건한 자손이 아니냐?”

이를 위해 하나님은 결혼과 가정을 하나님과 경건에 대해 가르치고 배우는 공동체로 설계하셨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잠언 6:20–21은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고 말한다.

모든 부모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잘 양육된 “화살 같은 자녀들”(시편 127:4–5)을 소망해야 한다. 부모가 자녀의 인격을 형성하면, 그 자녀들은 다시 자신의 자녀와 손주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시편 112:2).

 

하나님은 결혼을 신실함에 대한 엄숙한 헌신에 기초한 배타적이고 평생 지속되는 관계로 설계하셨다(누가복음 16:18, 로마서 7:1–6). 이것 또한 언약을 맺으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의 관계적 본성을 반영한다. 이러한 배타성은 십계명의 간음 금지 명령(출애굽기 20:14) 속에 강조되어 있다.

오늘날 우리는 언약보다 계약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계약은 한쪽이 위반하면 무효가 되지만, 언약은 상대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자신의 책임을 계속 감당하겠다는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맺으신 언약은 우리가 실패하더라도 취소되지 않는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디모데후서 2:13).

 

많은 문화에서 결혼 서약 후 반지를 교환하는 것은 이 배타적이고 평생 지속되는 언약의 눈에 보이는 상징이다. 그 순간 남편은 자신의 신부에게 결코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그림이 된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 8:38–39).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31–32에서 결혼이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언약 관계를 반영하도록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존 파이퍼 목사는 “결혼의 궁극적 목적은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언약 관계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성품과 본성을 반영하도록 결혼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이혼은 가증한 것이 된다. 그것은 단순히 언약의 파괴일 뿐 아니라, 결코 자기 신부를 떠나지 않으시는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에 대해 거짓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부부들은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이혼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파이퍼는 “결혼은 단지 사랑에 빠져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으로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자기 백성들과의 관계에 대해 참된 것을 부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의지의 행위이며, 언약을 지키는 것이다.

 

비록 하나님은 이혼을 미워하시지만, 타락한 세상 속에서 제한된 경우에는 허락하신다(마태복음 5:32). 이혼이 가져오는 비극은 결혼이 하나님께서 특별히 묶어 주신 다세대적 관계임을 보여준다.

 

히브리서 13:4은 말한다.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결혼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복 주시기 위해 만드신 아름답고 거룩한 제도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경시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들은 결혼을 높이고 기뻐하며 지켜야 한다. 또한 우리 자신의 결혼 안에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충실히 실천하며, 자녀들과 젊은 세대가 이 거룩한 부르심을 사모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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