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화 (A CULTURE OF DEATH)
수십 년 동안 낙태 옹호자들은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감추기 위해 완곡어법과 언어적 혼란을 사용해 왔다. 그것은 “시술(procedure)”이라 불렸고, “여성의 선택(woman’s choice)”이라 불렸다. 태아는 “태아(fetus)”, “수태의 산물(product of conception)”, 심지어 “세포 덩어리(blob of tissue)”라고 불렸다. 심지어 “낙태(abortion)”라는 단어조차도 작은 인간 생명이 죽임당한다는 사실을 흐리게 만든다. 전 세계적으로 낙태를 통해 생명이 끊어진 아기들의 수는 충격적이다. 이것은 진보가 아니다. 이것은 인간성의 퇴보다.
이 모든 언어적 속임수를 생각해 보면, 미국 연방대법원의 Roe v. Wade 판결 이후 6천3백만 건의 낙태가 시행되었다는 사실도 놀랍지 않다. 당시 해리 블랙먼(Harry Blackmun) 대법관은 이렇게 말했다.
“생명이 언제 시작되는가 하는 어려운 질문을 우리가 해결할 필요는 없다. 의학, 철학, 신학 분야의 전문가들조차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인간 지식의 발전 수준으로 볼 때 사법부는 그 답을 추측할 위치에 있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왜곡은 끝이 없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태아가 인간이라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들에게 “인격(personhood)”의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앨라배마의 낙태 옹호자 윌리 파커(Willie Parker)는 이렇게 말한다.
“생명은 사건이 아니라 과정이다. 만약 내가 사람을 죽인다고 생각했다면 낙태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태아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적 존재(human entity)이다. 도덕적 질서 속에서 나는 태아의 생명과 여성의 생명을 동등하게 두지 않는다. 둘 다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성이 내게 왔을 때 나는 그녀가 품고 있는 태아 때문에 그녀의 열망을 낮출 수는 없다.”
(역자 주: 태아(fetus)의 사전적 정의 “성숙한 동물의 주요 식별 가능한 특징들이 나타나는, 발달 후기 단계의 아직 태어나지 않았거나 부화하지 않은 척추동물.”)
겉보기에 “사람(person)”을 죽이는 것은 잘못이지만, “인간적 존재(human entity)”를 죽이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낙태 산업은 바로 이런 종류의 “논리” 위에서 번성해 왔다. 그러나 낙태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숨기는 그럴듯한 부인은 2015년에 잠시 깨졌다. 데이비드 델레이든(David Daleiden)의 의학진보센터(Center for Medical Progress)가 잠입 영상을 공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영상 속에서 미국 최대의 낙태 기관인 플랜드 페어런트후드(Planned Parenthood)의 간부들과 직원들은 낙태와 태아 장기 은밀 거래에 대해 냉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텍사스의 한 플랜드 페어런트후드 관계자는 부분출산 낙태(partial-birth abortion)를 가르치며 손상되지 않은 아기 뇌를 “확보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람은 인체 장기 판매를 숨기기 위해 회계 조작을 했음을 인정했다. 어떤 병원은 지역 회사가 판매할 수 있도록 온전한 태아를 얻기 위해 낙태 방식을 바꾸기도 했다.
태어나지 않은 인간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사고팔 수 있는 원재료 공급원이 된다는 뜻이었다. 이것이 오늘날 세속 문화가 인간을 바라보는 가장 낮은 수준의 관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 쓰라린 열매를 보고 있다. 지배 문화가 “인간”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정책과 법, 사회 관행이 형성될 것이며,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생명과 죽음의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살롱(Salon)의 평론가 메리 엘리자베스 윌리엄스(Mary Elizabeth Williams)는 2013년 「그래서 낙태가 생명을 끝낸다면 어떻다는 말인가?(So What If Abortion Ends Life?)」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생명이 수정 순간에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낙태에 찬성하는 입장을 갖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그녀는 이어서 말했다.
“태아는 인간 생명일 수 있지만, 자신이 머무는 여성과 동일한 권리를 갖는 것은 아니다. 주인은 여성이다. 여성의 삶과 그녀의 상황과 건강에 옳은 것이 그녀 안에 있는 비자율적 존재의 권리보다 자동적으로 우선해야 한다. 언제나.”
혹은 오웰의 동물농장(Animal Farm) 표현을 빌리자면, “어떤 생명은 다른 생명보다 더 평등하다”는 것이다. 윌리엄스는 이렇게 글을 맺는다.
“태아는 실제로 인간 생명이다. 희생시킬 만한 가치가 있는 생명이다.”
낸시 피어시(Nancy Pearcey)에 따르면, 우리는 이제 “새로운 인간 범주, 즉 인간 비인격체(human non-person)”를 갖게 되었다. Roe v. Wade 판결에서 블랙먼 대법관은 “수정헌법 제14조에서 사용된 ‘사람(person)’이라는 단어에는 태아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썼다. 태아는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존재가 아니므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기만은 낙태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지만, 이제는 안락사, 태아 조직 판매, 배아 줄기세포 연구, 유전공학, 우생학에도 적용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
우리는 이미 이런 일을 본 적이 있다. 1927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악명 높은 Buck v. Bell 판결에서 “저능(feebleminded)”하고 “부적합(unfit)”하다고 여겨진 사람들에 대한 강제 불임수술을 지지했다. 다수 의견에서 올리버 웬델 홈즈 주니어(Oliver Wendell Holmes Jr.) 대법관은 이렇게 썼다.
“사회가 명백히 부적합한 사람들이 그들의 종류를 계속 번식시키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세상 모두를 위해 더 낫다.”
그는 심지어 “바람직하지 않은 사람들의 수를 줄이기 위해” 영아살해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우생학(eugenics)은 본질적으로 인간에게 적용된 동물 교배학이었다. 그것은 다윈주의 인간관의 초기이자 쓰라린 열매였다. 영국에서 그 대표적 옹호자는 다윈의 사촌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이었다. 그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신이 “열등 인종”이라고 여긴 계층에서 태어난다고 믿었다. 골턴은 약자를 제거함으로써 “고도로 재능 있는 인간 종족”을 만들고자 했다.
미국에서는 플랜드 페어런트후드 설립자인 마거릿 생어(Margaret Sanger)가 “우리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정신적·신체적으로 결함 있는 사람들의 과도한 출산을 제한하고 억제하는 것”이라고 썼다. 결국 강제 불임수술법이 미국 30개 주에서 채택되었고, 6만 명이 넘는 장애인들이 강제로 불임수술을 당했다.
이 법들은 독일의 훨씬 더 거대한 불임 프로그램에 영향을 주었고, 그것은 결국 60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이 학살된 홀로코스트의 토대를 놓았다. 나치는 장애인을 “생명 가치가 없는 삶(Lebensunwertes Leben)”이라고 불렀다.
유대인 가상도서관(Jewish Virtual Library)에 따르면, 강제 불임수술은 1934년 1월에 시작되었고, 총 30만~40만 명이 법에 의해 불임수술을 당했다. 대부분은 “저능” 진단 때문이었으며, 그 다음은 정신분열증과 간질이었다. 일반적인 수술 방식은 남성의 정관수술과 여성의 난관 결찰이었다. 소수의 경우에는 방사선(X선 또는 라듐)이 사용되었다. 특히 여성들이 난관결찰의 위험성 때문에 더 많이 사망했으며, 수천 명이 이 수술의 결과로 죽었다.
그러나 누가 번식에 “부적합”한지를 결정하는가? 권력을 가진 자들이다.
한 문화가 하나님을 버릴 때, 인간의 권리와 존엄과 가치를 위한 유일하게 확실한 기초도 잃어버리게 된다. 인간이 무엇인지를 하나님이 정의하시든지, 아니면 인간이 정의하든지 둘 중 하나다. 그러나 인간이 정의하는 것은 언제든 다시 정의될 수 있다. 인간이 부여한 권리는 인간이 빼앗을 수도 있다.
하나님 없이 “인간”에 대한 정의는 결국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집단에 의해 결정되고 강제될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국가 권력과 결탁하게 된다. 국가는 생명권을 보호하기보다 “어떤 생명이 살아갈 가치가 있는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20세기가 우리에게 준 가장 큰 교훈이어야 했다.
20세기의 거대한 폭정들—나치즘, 파시즘, 공산주의—은 본질적으로 종교적 운동이었다. 하나님은 국가로 대체되었고, 국가는 절대 복종을 요구했다. 오웰의 1984처럼 국가는 현실 자체를 정의했으며, 인간 생명의 “현실”까지 규정했다.
히틀러와 나치에게 “아리아 인종”은 진화론적 “적자생존” 속에서 우월하고 승리하도록 예정된 존재였다. 마르크스와 그의 많은 추종자들에게 국가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였다. 자신의 재산을 국가에 자발적으로 내놓지 않은 사람들은 약탈당하고 굶주림을 당했으며 살해되거나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전체적으로 볼 때, 소련·중국·캄보디아·쿠바·북한·베트남 등 공산주의 정권 아래에서 1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임당했다.
이러한 20세기의 전체주의 운동들이 아무리 끔찍했다 해도, 그들의 사망자 수는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훨씬 더 거대한 공포에 비하면 작아 보인다. 우리는 이미 1973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비참한 Roe v. Wade 판결과, 그 결과 낙태를 통해 합법적으로 6천3백만 명의 아이들이 죽임당한 사실을 언급했다. 여기에 더해 1979년 중국의 악명 높은 한 자녀 정책 이후 낙태된 7천만 명의 여자 태아들을 더해야 한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시행된 수많은 낙태까지 더하면,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집단학살(genocide)을 우리의 눈앞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미국의 노예제도, 나치즘, 파시즘을 떠받쳤던 치명적 이데올로기들은 대부분 불명예스럽게 되었지만, 낙태를 정당화하는 비인간화 이데올로기의 옹호자들은 여전히 학계, 엔터테인먼트, 법조계, 정부 안에서 명성과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최대의 낙태 제공 기관인 플랜드 페어런트후드는 매년 납세자들로부터 5억 달러 이상의 지원을 받고 있다.
물론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만 낙태의 희생자는 아니다. 낙태는 위기 임신 상황에 있는 여성들에게 생사를 결정해야 하는 짐을 지운다. 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아이를 낙태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깊은 괴로움을 겪지만, 막다른 상황에 몰렸다고 느끼며 낙태는 매혹적인 해결책처럼 보인다. 더 많은 경우에는 낙태가 그들의 선택조차 아니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남자친구나 남편에게 떠밀려(때로는 울부짖고 저항하면서도) 낙태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낙태로 인해 짊어지는 깊은 죄책감과 트라우마는 평생 그들을 괴롭힐 수 있다.
이 모든 참상이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생명은 싸고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Lebensunwertes Leben—“살 가치가 없는 생명”이라는 개념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나는 누구인가?”라고 물을 때, 세상은 이렇게 대답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연히 생겨난 존재. 의미 없는 물질 덩어리.” 이것이 공립학교와 전 세계에서 사실로 가르쳐지는 다윈주의 진화론의 기본 메시지다. 점점 더 많은 젊은이들이 스스로 생명을 끊고 있다. 미국의 연간 자살률은 1999년부터 2014년 사이 24퍼센트 증가했다. 2023년 기준으로 자살은 15세에서 24세 청년들의 두 번째 주요 사망 원인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또 다른 우려스러운 흐름들을 본다. 우생학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2017년 CBS 뉴스는 아이슬란드가 “다운증후군을 제거하기 직전”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그 나라는 다운증후군을 제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산전 검사와 낙태를 통해 다운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을 제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인구 통제(population control)” 운동 또한 힘을 얻고 있다. 그것은 인간을 환경의 해충처럼 바라보는 인간관에 의해 움직인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존 N. 그레이(John N. Gray)는 인간을 다른 생명체들을 멸망시키는 탐욕스러운 종(species)으로 묘사한다. 그는 그의 책 Straw Dogs: Thoughts on Humans and Other Animals에서 이렇게 썼다.
“호모 사피엔스는 수많은 종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반드시 보존할 가치가 있는 존재도 아니다. 언젠가 인간은 멸종할 것이고, 인간이 사라지면 지구는 회복될 것이다. 인간이라는 동물의 마지막 흔적이 사라진 뒤에도, 인간이 파괴하려 했던 수많은 종들은 계속 살아갈 것이다. 지구는 인류를 잊을 것이다. 생명의 연극은 계속될 것이다.”
이처럼 철저히 반인간적인 관점은 현대 환경운동 지도자들 사이에서 너무나 흔하다. 그것은 인간을 탐욕스럽고 소비적인 동물로 본 토머스 맬서스(Thomas Malthus)의 사고를 떠올리게 한다. 최근 한 헤드라인은 이렇게 외쳤다.
“지구를 구하고 싶은가? 아이를 낳지 마라! 새로운 생명을 세상에 데려오는 것이 환경에 가장 파괴적인 행동이라는 연구 결과.”
만약 아이들을 지구를 파괴하는 존재로 보거나, 개인의 자율성을 방해하는 비용 많이 들고 시간 잡아먹는 장애물로 본다면, 당연히 아이를 덜 낳게 될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의 출산율은 지난 30년 중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전 세계적으로 산업화되고 세속화된 국가들은 인구 감소를 겪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흐름은 초인간주의(transhumanism)다. 이것은 과학과 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현재 육체적·정신적 한계를 넘어 진화하려는 운동이다. 그 대표적 옹호자 중 한 명은 프린스턴대학교의 유전학자 리 실버(Lee Silver)다. 그는 Remaking Eden: Cloning and Beyond in a Brave New World(재건설되는 에덴 : 멋진 신세계 속의 복제와 미래 인간)에서 미래의 인류가 두 종족으로 분리될 것이라고 상상한다. 하나는 사회를 지배하는 유전적으로 강화된 초인간들(super-persons), 다른 하나는 저임금 노동자와 서비스 제공자가 될 하위 인간들(sub-persons)이다. 아마 자신은 첫 번째 집단에 속할 것이라 가정하면서, 그는 이 새로운 세상이 일종의 유토피아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초인간주의자들, 예를 들어 구글의 엔지니어링 책임자였던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인공지능의 발전이 인간의 뇌를 컴퓨터에 다운로드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여 일종의 디지털 불멸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종(species)’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물학적 개념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생물학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러나 철학자 모티머 애들러(Mortimer Adler)는 전혀 다른 미래를 보았다. 그는 1960년대에 이렇게 경고했다.
“우월한 인간 집단은 자신들이 짐승처럼 부려 사용하는 동물들을 대하는 방식과 비슷한 논리로, 열등한 인간 집단의 노예화·착취·심지어 집단학살까지도 사실적·도덕적 근거를 들어 정당화하게 될 것이다.”
인간 생명에 대한 이러한 관점이 맺는 또 하나의 쓰라린 열매는 복지국가의 확산이다. 복지 프로그램은 인간의 노동하고 혁신하며 자원을 관리하는 능력을 약화시킨다. 수혜자들에게 의존성을 키움으로써,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얻는 존엄성과 자신과 타인을 돌보는 삶의 깊은 의미를 빼앗기게 된다. 해외 원조, 국제 개발 프로젝트, 심지어 선의로 행해지는 선교 활동조차도 비인간적이고 파괴적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우리 문화가 “인간”의 의미를 비극적으로 재정의함으로써 맺게 된 끔찍한 열매들의 일부에 불과하다. 모든 세대에서 교회의 위대한 사명은 인간 생명을 비하하고 파괴하는 거짓말에 맞서고, 인간이 진정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깊은 진리를 소중히 여기고 옹호하며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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