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와 거짓
성경을 통해 우리는 왜 악이 존재하는지도 배운다. 현실은 물질적인 동시에 영적인 것이다. 영적 세계는 하나님의 영역이지만 천사들의 영역이기도 하다. 이 천사들 가운데 가장 강력했던 존재인 사탄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께 반역했다.
현대인의 귀에는 천사나 악마 이야기가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 있다. 많은 사람은 현실을 단지 움직이는 물질 정도로만 여긴다. 그러나 영적 세계는 환상이 아니라, 지금 당신이 앉아 있는 의자만큼이나 실제적이다. 이 보이지 않는 세계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한다.
성경에 따르면 사탄은 주로 속임수를 통해 하나님께 대한 반역을 확장해 간다. “비방자”라는 뜻의 devil(마귀)이라는 이름처럼, 그는 창세기 1–2장의 창조 이야기 직후 처음 등장한다. 아담과 하와는 뱀의 모습으로 나타난 마귀를 본다. 그리고 그의 첫 행동은 예상대로 속이는 것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세기 3:1–4).
아담과 하와는 그의 거짓말을 믿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사탄의 하나님을 대적하는 반역에 동참했고, 타락한 인간은 그 이후로 계속 반역해 왔다. 이것이 우리가 거짓말하고, 속이고, 진실을 흐리려는 성향을 가진 이유다. 우리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죄인인 우리의 참모습이 드러날까 두려워 이런 죄를 범한다. 아담과 하와처럼 우리는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하며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숨는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며 선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거짓말하실 수 없다. 반면 사탄은 끊임없이 거짓말한다. 그의 속임수는 세상의 모든 악과 깨어짐과 혼란과 비탄 뒤에 있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0:10에서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라”고 말씀하셨다. 또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한복음 8:44)고 하셨다.
진리가 육신이 되다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 세계와 우리 각 사람을 크신 사랑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악한 지배자에게 버려두지 않으셨다. 대신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하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것이다.
역사는 이 구원의 사명이 펼쳐지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중심, 곧 인류 역사의 중심에는 성육신이 있다. 약 2천 년 전, 만물의 창조주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시간과 공간 속에 들어오셨다. 우리가 거짓과 속임수의 안개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그분은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 오셨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를 위하여 내가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요한복음 18:37).
그러나 예수님은 단지 진리를 드러내시는 데서 멈추지 않으셨다. 순전한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로새서 1:19–20).
기독교 변증가 그레고리 쿠클은 성육신을 이렇게 설명한다.
“아들은 결코 하나님 되심을 그치지 않으셨지만 자신의 신적 권리를 내려놓으셨다. 사랑 때문에 왕관을 벗고 홀을 내려놓고 왕의 예복을 벗은 왕처럼, 가난한 백성 가운데 거하시며 가장 낮은 자처럼 사셨다. 왕 되심을 잃지 않으셨지만 스스로 낮아지셔서 멸시받는 죄인의 죽음까지 기꺼이 감당하셨다. 모두 자기 백성을 섬기고 구원하시기 위해서였다.”
예수 안에서 궁극적 현실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궁극적 진리는 철학적 추상 개념이나 형이상학적 필연성이 아니다. 진리는 한 인격,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안에서 사랑과 진리, 정의와 긍휼이 나타났다. 사실 우리는 사랑을 말하지 않고 진리를 말할 수 없다. 사랑과 진리는 분리될 수 없다. 둘은 서로 연결될 때 가장 완전하게 정의되고 드러난다.
신약성경에서 “진리”를 뜻하는 단어는 헬라어 알레테이아(alētheia)인데, “드러나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 단어의 어근인 란타노(lanthano)는 “숨겨져 있다”라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오늘날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과 비슷하게)은 진리가 감추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경에 따르면 진리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났다. 숨겨져 있던 것이 이제 밝혀진 것이다.
예수님은 다른 어떤 인간과도 다른 분이었다. 그는 부처나 무함마드나 공자처럼 단지 진리를 말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곧 진리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이 주장들이 사실일 수 있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예수는 거짓말쟁이이거나 미친 사람이거나 악마였을 것이다. C. S. 루이스는 예수의 놀라운 주장들을 근거로,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예수께서 단지 위대한 도덕 교사만은 아니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여러분은 선택해야 한다. 이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든지, 아니면 미치광이이거나 그보다 더 악한 존재이든지 둘 중 하나다. 그를 어리석은 자로 치부할 수도 있고, 침을 뱉고 악마라 하며 죽일 수도 있으며, 혹은 그의 발 앞에 엎드려 그를 주님과 하나님이라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를 단지 위대한 인간 스승이었다는 식의 헛소리는 하지 말라. 그는 그런 선택지를 우리에게 남겨두지 않았다.”
진리의 문화
사상은 결과를 낳는다. 한 민족이 진리에 대해 무엇을 믿는가는 그 문화—가치관, 규범, 법, 제도—에 반영된다. 시편 115:8은 우리가 우리가 예배하는 존재를 닮아 간다고 말한다. 진리 위에 세워진 문화는 번영하게 된다.
진실을 말하려는 헌신은 건강한 관계와 사회의 기본 기능에 필수적이다. 모든 사람이 항상 거짓말하는 사회—결혼, 가정, 기업, 조직, 국가—를 상상해 보라. 아무도 신뢰할 수 없게 되고, 모든 것은 빠르게 무너질 것이다. 선하시고 신뢰할 수 있으며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문화는 일상 속 정직을 높이 평가하는 문화가 된다. 그리고 제도에 대한 높은 신뢰를 누리게 된다.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지수를 보면, 싱가포르를 제외하고 부패가 가장 낮은 나라들은 유대-기독교적 틀 속에서 형성된 국가들이다. 반대로 부패가 가장 심한 나라들은 이러한 틀을 갖고 있지 않았다.
진리는 정의에 필수적이다. 정의는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진실을 발견하는 데 기초한다. 증인의 신뢰성과 진실성, 그리고 판사와 배심원들이 진실을 찾으려는 의지가 정의의 토대다. 성경에서 거짓 증언은 중대한 불의이며 십계명 중 하나를 어기는 일이다.
정의는 궁극적인 선악의 기준에 의존한다. 정의는 인간이 만든 법보다 더 높은 법을 요구한다. 왕이나 총리조차 그 법 아래 책임을 져야 한다. 미국 연방대법원 건물 꼭대기에 십계명 조각상이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십계명의 도덕적 진리가 없다면 정의는 사라지고, 오직 힘의 논리만 남게 된다. 정의는 진리와 떼어낼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진리가 죽으면 정의도 함께 묻힌다.”
서구의 대학들도 진리 추구 위에 세워졌다. 미국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인 하버드대학교는 1636년 매사추세츠 식민지에서 설립되었다. 학교 이름은 자신의 도서관과 재산 절반을 기증한 젊은 목회자 존 하버드의 이름에서 따왔다. 학교의 표어는 라틴어로 “진리”를 뜻하는 Veritas이다.
버지니아대학교 설립 당시 토머스 제퍼슨은 이렇게 말했다.
“이 기관은 인간 정신의 무한한 자유 위에 세워질 것이다. 우리는 진리가 어디로 이끌든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성이 자유롭게 오류와 싸울 수 있는 한 오류를 용납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진리에 대한 헌신이 없다면 대학도 존재할 수 없고, 현대 과학도, 언론도, 역사 연구도 존재할 수 없다. 진리가 없다면 정부는 권력 행사가 될 뿐 자유민주주의도 존재할 수 없다. 자유와 진리는, 정의와 진리처럼,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자연 세계와 역사, 그리고 이 세계와 역사를 창조하신 분에 대한 진리를 어느 정도라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번영은커녕 생존조차 할 수 없다. 진리가 없으면 모든 것은 혼란과 폭정으로 무너진다. MIT의 시난 아랄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진리에 대한 어떤 개념은 인간 활동 거의 모든 영역의 올바른 기능에 핵심적이다. 만약 우리가 세상이 거짓에 잠식되도록 허용한다면, 우리는 재앙을 초대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것이 바로 오늘날 “탈진실(post-truth)” 시대가 초래하고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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