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세상을 치유하는 10가지 단어

1. 진리 (TRUTH) -1

lamp365 2026. 5. 14. 22:33

“이를 위하여 내가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 요한복음 18:37 

 

1. 진리 (TRUTH)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현실과 일치하는 것.

재정의된 진리 (TRUTH REDEFINED)

  1.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내적이고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현실감
  2. 지배 집단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사회적 구성물

2018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억만장자 연예인이자 방송계 거물인 오프라 윈프리의 강력한 수상 연설은, 미디어계에 퍼져 있던 성적 학대 고발 문제에 귀를 기울이던 청중들을 크게 움직였다. 심지어 그녀가 언젠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지도 모른다는 추측까지 불러일으켰다.

윈프리는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자신의 진실(your truth)을 말하는 것이 우리 모두가 가진 가장 강력한 도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만큼 충분히 강해지고 용기를 얻은 모든 여성들이 정말 자랑스럽고 감동적입니다.”

이후 그녀는 덧붙였다.

“너무 오랫동안 여성들은 그 남성들의 권력에 맞서 자신의 진실을 말하면 듣지 못하거나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시대가 왔습니다.”

윈프리가 반복해서 사용한 “your truth(당신의 진실)”라는 표현은 사람들의 귀를 번쩍 뜨이게 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바이런 타우(Byron Tau)는 트위터에 이렇게 적었다.

“요즘 많은 유명인들이 ‘the truth(진리)’ 대신 ‘your truth(당신의 진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본다. 왜 그런 표현을 쓸까?"

그는 “your truth”라는 표현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 사실(진리)의 가능성을 무너뜨리고, 대신 각자 사적인 진실 버전을 만들어낸다고 지적했다.

 

“진리가 무엇이냐?”
이 질문은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님께 심문 중에 던졌던 유명한 질문이다(요한복음 18:28–40). 이 질문은 오늘날까지도 계속 울려 퍼지고 있다.

오프라 같은 사람들은 “당신의 진실”, “나의 진실”을 말한다. 그들에게 진리는 개인적이고 사적인 신념이다. 진정성 있게, 혹은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게” 사는 것이 최고의 가치가 된다.

그러나 타우는 이 재정의된 진리 개념의 문제를 정확히 짚었다. 그것은 “합의된 사실의 가능성을 무너뜨린다.” 이 새로운 문화적 정의 속에서는 사실이 사라지고, 결국 진리 자체가 사라진다.

프로이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은 없고, 해석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실은 존재한다!

 

진리는 단지 당신이나 내가 믿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실제적이고 객관적인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과 상관없이 존재하는 실제 세계 속에 살고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은 지붕에서 뛰어내려도 공중이 자신을 지탱해줄 것이라고 믿을 수 있다. 그것이 “당신의 진실”일 수는 있어도, 실제 진리는 아니다. 직접 시험해 보면 중력이 당신의 믿음과 상관없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는 실제적이고 객관적인 우주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진리를 아는 것은 지극히 중요하다. 사실 진리에 대한 지식 없이는 하루도 제대로 살아갈 수 없으며, 더더욱 번영할 수 없다.

진리의 정의 (TRUTH DEFINED)

빌라도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말하자면, 진리는 현실과 일치하는 것이다. 정말 단순하다. 진리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 실제로 일어난 일을 정확히 설명한다. 진리는 “사실(fact)”과 동의어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비슷하게 정의했다.

“판단이 외적 현실과 일치할 때 그것은 참이라고 불린다.”

진리의 반대말은 환상, 거짓, 허구, 공상, 망상이다. 환상을 현실로 착각하는 것은 오류다. 현실과 단절되는 것은 망상이다. 진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어떤 것을 참(혹은 거짓)이라 말하는 것은 속이는 것이며 거짓말이다.

필라델피아 가톨릭 대주교 찰스 채풋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좋아하든 아니든 진리는 존재한다.
우리는 진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며, 우리의 취향대로 그것을 바꿀 권한도 없다.”

 

 

                                   진리 :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현실과 일치하는 것.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현실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그것은 공기나 물처럼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이다. 우리의 행복과 안녕이 진리에 달려 있기 때문에, 우리는 속임을 당하면 본능적으로 화가 나고 불쾌해진다.

진리는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진실하게 말하는 사람은 정직하고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높이 평가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믿을 수 있으며, 관계는 오직 신뢰라는 비옥한 토양 위에서만 자라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 세계의 현실

진리는 우리의 생각이나 신념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고정된 기준점을 요구한다. 가장 분명한 기준점은 우리 주변 세계이다.

지금 내가 타이핑하고 있는 컴퓨터, 일하고 있는 책상, 앉아 있는 의자, 내 손가락과 몸과 마음, 아침에 먹은 달걀, 하늘과 나무와 별과 은하, 세포와 원자와 전자들. 이런 것들은 내가 믿든 믿지 않든 존재한다.

우리는 과학을 통해 물리 세계를 연구한다. 따라서 과학은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이며, 실제로 존재하는 것, 즉 무엇이 실재인지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물리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현실은 없는가? 더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현실은 없는가?

물리 세계 자체가 그 답을 가리킨다. 세상은 무작위적이거나 혼란스럽지 않고 질서정연하다. 지구에서 보면 태양은 규칙적으로 뜨고 진다. 계절은 바뀌고, 씨앗은 자라 식물이 되고 열매를 맺는다.

행성의 움직임에서 세포 내부의 작동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혼돈이나 우연이 아니라 질서와 설계를 본다. 고정된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질서 있는 우주가 없다면 과학도 수학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자연법칙들은 어디서 왔는가? 이 질서와 설계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우리는 목적도 본다. “눈은 보기 위해 있고, 귀는 듣기 위해 있으며, 지느러미는 헤엄치기 위해 있고, 날개는 날기 위해 있다.”

낸시 피어시는 이렇게 말한다.

“각 기관은 다른 기관들과 정교하게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전체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통합적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통합 구조는 설계의 특징이다—계획, 의지, 의도.”

물리 세계 안의 이 목적성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목적뿐 아니라 복잡한 정보도 존재한다. 세포의 핵 안에는 DNA 분자가 있다. 이 이중 나선 구조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저장한다.

피어시는 이렇게 설명한다.

“유전학자들은 DNA를 유전 정보의 ‘도서관’을 저장하는 데이터베이스로 말한다. 그들은 RNA가 뉴클레오타이드의 네 글자 언어를 단백질의 스무 글자 언어로 어떻게 번역하는지 연구한다.”

복잡한 정보는 우연히 생겨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책상 위에 흩어진 글자들이 시간이 충분하면 우연히 게티즈버그 연설문으로 배열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같다.

복잡하고 구체적인 정보의 유일한 알려진 근원은 정신(mind)이다. 그러나 누구의 정신인가? 우리의 정신은 아니다. 우리는 DNA를 발견했을 뿐, 그것을 만든 것이 아니다.

궁극적 현실 (ULTIMATE REALITY)

모든 결과에는 충분한 원인이 있어야 한다. 자연 세계의 설계와 목적성은 초월적이며 지적이고 목적을 가진 설계자를 가리킨다.

복잡한 정보의 존재는 저자를 필요로 한다—모든 단어 뒤에 계신 위대한 말씀(Logos)을.

이것이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한 핵심이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로마서 1:20)

 

물리 세계는 우주의 우연한 사고가 아니다. 그것은 창조물이며, “분명히 보이는” 창조주를 가리킨다.

반대의 입장은 자연 안의 설계와 질서와 법칙과 목적과 복잡한 정보가 우연히 생겨났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진리를 “막는 것”이라고 말한다(로마서 1:18).

시편 19:1도 같은 주제를 강조한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우리가 자연 세계에 대해 무언가를 발견할 때마다, 우리는 그 창조주에 대해 무언가를 배우게 된다.

과학은 이러한 발견을 이루는 과정이며, 과학 자체도 두 가지 기초 전제 위에 서 있다. 이것들이 없다면 과학은 무너지고 진리는 무의미해진다.

  •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질서 있고 예측 가능한 지적인 우주
  • 물리 세계를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무엇이 참인지 거짓인지 분별할 수 있는 인간 

역사상 오직 하나의 세계관만이 이러한 전제들을 충분히 설명해 준다.

근대 과학이 성경적 세계관 속에서 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그 세계관에는 발견 가능한 진리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함께 있었다.

하나님을 믿었던 과학의 선구자들 가운데는 천문학의 코페르니쿠스, 과학 방법론을 세운 베이컨, 수학과 천문학의 케플러, 수학과 물리학의 파스칼, 물리학의 뉴턴 등이 있다.

성경은 이렇게 시작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은 다른 신들과 다르다. 그분은 비인격적인 우주적 힘이나 거대한 “만물 이론”이 아니다. 그분은 “그것(it)”이 아니라 “그분(He)”이신 인격적 하나님이다.

그분은 인간 상상의 산물이나 환상, 동화가 아니다. 변덕스럽고 속임수 많고 제멋대로인 이교 신들과도 다르다. 뇌물로 조종될 수도 없다.

영원하시고 변함없는 우주의 창조주만이 현실을 위한 견고하고 신뢰할 수 있는 기준점을 제공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브리서 13:8)

그분의 말씀은 “하늘에 굳게 섰다”(시편 119:89).
그분은 완전히 진실하시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민수기 23:19)

 

히브리 성경에서 “진리”라는 단어는 에메트(emeth) 로 음역되는데, 이는 견고함, 안정성, 신뢰성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진리를 위한 견고하고 고정된 토대이시다. 그분은 모든 진리 뒤에 계신 위대한 진리이시다.

물질 세계는 그분에 의해 창조되었고 그분께 의존한다. 그분을 떠나서는 진리도 의미를 잃고, 주관주의와 상대주의의 늪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BBC 저널리스트 말콤 머거리지는 이렇게 말했다.

“삶의 본질적 특징이자 필수 요소는 현실을 아는 것이며, 그것은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

 

계시된 진리 (THE TRUTH REVEALED)

하나님은 창조 세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셨을 뿐 아니라, 자신의 말씀을 통해서도 자신을 계시하셨다.

그분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말씀하셨다. 모세에게 말씀하셨고 선지자들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셨다. 시내산에서는 십계명의 형태로 도덕적 진리를 계시하셨고, 그것을 친히 기록하셨다.

이 진리들은 모든 시대와 모든 사람을 위한 고정된 도덕적 기준점으로 서 있다.

교부들의 표현을 빌리면, 하나님의 계시는 두 권의 책으로 우리에게 온다.

  • 하나님의 말씀의 책(성경)
  • 하나님의 세계의 책(창조 세계)

여기에 세 번째 “책”을 더할 수 있다. 그것은 인간 이성과 양심의 내적 증거, 곧 “마음에 새겨진 율법”(로마서 2:15)이다.

우리는 과학의 도구와 방법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주의 깊게 연구함으로 진리를 탐구한다. 또한 건전한 해석학의 원리와 성령의 조명 가운데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연구함으로 진리를 탐구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리를 알고 그 안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진리를 알 수 있는 능력, 곧 이성과 논리적 사고를 주셨다. 우리는 질문하고 답을 찾으며, 이성과 논리를 사용하여 성경과 창조 안에 담긴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진리를 향한 이러한 탐구는 인간 본성의 근본적인 측면이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의 영광의 일부이다(창세기 1:27).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이 신화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성경에는 지혜문학과 예언, 시가 담겨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역사책이다. 성경은 실제 사건들을 기록한다고 주장한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같은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를 제우스 같은 신화적 존재가 아니라 실제 인간으로 제시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목격자였다고 주장한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들을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베드로후서 1:16).

 

창조와 마찬가지로 역사는 진리를 붙들어 주는 또 하나의 고정점이다. 나는 1964년 10월 16일 오리건 주 로즈버그에서 태어났다. 이것은 이제 “돌에 새겨진” 사실이다. 바꿀 수 없는 진실이다. 이것은 몇 분 전이나 몇 초 전에 일어난 최근의 사건뿐 아니라 먼 과거의 사건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바르게 이해할 때 역사 연구는 진리를 탐구하는 일이다.

성경이 역사 기록으로서 지닌 진실성과 신뢰성은 역사학자들이 어떤 역사 문헌의 진정성·정확성·신뢰성을 판단할 때 사용하는 동일한 도구와 방법으로 평가될 수 있다. 다른 고대 문헌들과 함께 신중하게 검토해 보면, 성경은 역사적 신뢰성 면에서 독보적이다.

이 성경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된다. 또한 무엇이 선하고 참되며 아름다운지를 배우게 된다. 더 나아가 사랑, 정의, 결혼, 그리고 진리 같은 단어들의 참된 의미도 배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단어들은 참되고 객관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것들을 재정의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무너진 세상을 치유하는 10가지 단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2. 인간(HUMAN)-1  (1) 2026.05.16
1. 진리 (Truth)-4  (1) 2026.05.16
1. 진리(Truth) - 3  (0) 2026.05.15
1. 진리(truth)-2  (1) 2026.05.14
무너진 세상을 치유하는 10가지 단어  (2) 2026.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