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세상을 치유하는 10가지 단어

10장 사랑(Love)-7

lamp365 2026. 6. 10. 12:06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HOW SHOULD WE THEN LIVE?)

진정한 사랑은 신실한 목회자들과 기독교 교사들에 의해 가르쳐져야 하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관계 속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우리는 사랑에 대한 지식과 실천 안에서 성장해야 하며, 특히 사랑의 가장 심오한 아가페(agape) 사랑을 배워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 문화 속에 지배적으로 자리 잡은 사랑의 잘못된 정의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러한 왜곡된 사랑의 개념은 교회 안에도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교회가 사랑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실천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심각한 오류들을 시급히 바로잡아야 한다.

 

사랑과 감정을 혼동함 (Confusion about love and emotions)

앞서 언급했듯이, 잘못된 사랑의 정의는 사랑을 낭만적 애정과 성적 욕망이라는 강렬한 감정으로 축소시킨다. 그것은 자기중심적이며 자기애적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왜곡된 사랑은 교회 안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으며, 특히 남녀 관계와 결혼에 있어서 그러하다.

이처럼 감정 중심적인 사랑 이해는 종종 이혼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되지만, 그것은 거짓이다.

진정한 사랑은 감정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의지, 선택, 그리고 주체성에 의해 움직인다. 우리는 사랑하고 싶은 감정이 없을 때조차 사랑하기를 선택한다. 감정은 변덕스럽기 때문에 감정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두지 않는다. 감정은 왔다가 사라진다. 만약 사랑이 전적으로 감정에 기초한다면 사랑은 일관성이 없고 조건적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의 본질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견고하고, 일관되며, 신실하고, 무조건적이다. 사랑은 용서하며 잘못을 기억하지 않는다. 사랑은 화해를 추구하며 신뢰를 회복하려고 한다.

감정과 정서는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은 극히 어렵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강하게 하실 것을 신뢰해야 한다. 하나님은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기꺼이 공급해 주신다.

우리를 깊이 상처 입힌 사람을 사랑하기로 선택하는 것, 특히 분노와 쓴뿌리, 원망, 복수심이 우리를 압도할 때 사랑을 선택하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그러나 그런 기적이 일어날 때, 세상은 하나님의 실재와 능력을 보게 된다. 원수를 사랑하는 기적은 어둠 속에 비치는 찬란한 빛과 같다. 그것은 사람들과 문화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바로 그것이 우리의 부르심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자유의지와 선택에 의해 움직인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반대로 사랑은 감정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극단으로 치우친다. 이것 역시 잘못이다.

기쁨과 즐거움 같은 감정은 사랑의 중요한 요소이다. 사랑에서 감정을 완전히 분리시키는 것은 사랑의 개념에 회복하기 어려운 손상을 입힌다. 올바른 균형은 감정과 정서가 사랑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사랑을 이끄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이 기차를 움직이는 엔진이라면, 감정과 정서는 필연적으로 그 뒤를 따라오는 것이다. 

 

사랑을 ‘친절함’이나 ‘호감 가는 태도’로 오해함 (Mistaking love for “niceness” or “winsomeness”)

사랑을 단순히 친절함과 동일시하는 것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 가장 널리 퍼져 있고 가장 파괴적인 사랑에 대한 오해일 수 있다. 그것은 여러 측면에서 잘못되었다.

기본 생각은 그리스도인들이 친절하고, 온유하며,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생각은 종종 그 이상으로 나아간다. 즉,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고 존중한다는 것은 그들의 신념과 행동이 거짓되고 파괴적일지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로 변질된다.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받아들이셨다고 주장한다. 그렇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셨다. 그러나 죄 자체를 인정하거나 정당화하지는 않으셨다. 예수님은 그들의 행동이 죄라고 말씀하셨고 회개를 촉구하셨다(요한복음 8:1-11). 예수님은 죄에 대해 진실을 말씀하셨지만 동시에 죄인들을 사랑하셨다.

진리와 사랑을 분리하면 사랑이 파괴된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며”(에베소서 4:15), 둘을 나누려는 유혹을 피해야 한다.

 

사랑을 단순한 ‘친절함’으로 이해하는 잘못된 생각은 사람들이 거칠거나 공격적으로 보일까 두려워 진리를 사랑으로부터 분리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이 복음 전도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사랑을 단지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게 할 뿐 아니라, 사랑을 복음 전도의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복음 전도는 중요하지만 최고의 목적은 아니다. 최고의 목적은 사랑이다. 사랑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가장 높은 부르심이며 의무이다. 만약 우리가 전도하는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교회 초청을 거절한다면,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사랑할 의무가 없어지는가?

복음주의 교회는 중요한 것인 복음 전도를 궁극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렸고, 이것이 많은 문제의 원인이 되었다. 복음 전도는 더 큰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그것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드는 것이며, 그들이 예수님처럼 사랑하도록 양육받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문화 평론가 존 다니엘 데이비드슨(John Daniel Davidson)은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사람들을 신앙으로 이끄는 가장 좋은 방법이 ‘호감 가는 태도’와 ‘좋은 사람 되기’라고 믿어 왔다. 그러나 그것은 큰 실수이다. 사랑하는 일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해치는 거짓 속에 머물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진실을 말해야 한다.

트랜스젠더리즘과 같은 문제에 관해서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사랑으로 해야 할 일은 그것이 정상적이거나 건강한 것인 양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트랜스젠더 이데올로기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사상에 빠질 위험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고, 이미 그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미국의 여러 교단에 걸쳐 있는 기독교 지도자들에게는 진실을 말하려는 의지가 심각하게 부족했다. 이것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용기를 가져야 하며, 지도자들은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진실을 말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즉, 남성과 여성에 관한 진실, 태아에 관한 진실, 사회가 어떠한 원리 위에 세워져야 하는지에 관한 진실, 결혼과 자녀에 관한 진실을 사랑 안에서, 단호하고 분명하게, 변명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말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이다.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사랑하신 방식으로 사람들을 사랑하는 길이다. 또한 그것은 진리를 변호하느라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얻고 한 나라를 변화시키는 길이기도 하다."

 

이제 사랑에 대한 여러분의 이해와 실천을 돌아보라. 다음 질문들을 깊이 생각해 보라.

여러분의 사랑은 올바른 순서를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헌신하는 다른 “신들”이 있는가?

사람보다 재물이나 소유를 더 사랑하고 있는가?

여러분은 마태복음 19:16-22에 나오는 부자 청년과 같은가? 그는 하나님을 사랑했지만 자신의 막대한 재산보다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기를 원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셨을 때, 그는 그런 희생을 감당하려 하지 않았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어떤 대상이 있다면, 희생은 반드시 요구된다. 우리가 포기하는 것에만 집중할 때 이러한 희생은 매우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가 잃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훨씬 쉽다. 우리가 얻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의도하신 영원하고 풍성하며 기쁨으로 가득한 삶이다. 우리가 얻는 것이 너무나 가치 있기 때문에 비교해 보면 우리는 사실상 아무것도 잃지 않고 모든 것을 얻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가치의 우선순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과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것을 사느니라.” (마태복음 13:44-46)

 

또한 목회자 존 파이퍼(John Piper) 의 말처럼, “하나님의 오른편에 있는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을 얻기 위해 세상의 짧고 만족스럽지 못한 쾌락을 부인하라.”

 

여러분은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를 사랑과 헌신의 가장 높은 자리에 두기 위해 무엇을 “팔아 버리거나” 포기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것이 하나님보다 가치가 낮다고 해서 가치가 전혀 없거나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뜻은 아님을 기억하라. 예를 들어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 세계는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보다 가치가 낮지만, 여전히 엄청난 가치를 지니며 우리의 사랑과 돌봄과 존중을 받을 만하다.

올바른 사랑의 질서는 인간관계에도 적용된다. 여러분의 배우자와 자녀(결혼했다면), 직장 동료, 이웃, 친구, 성도들, 지역사회 사람들, 심지어 원수들과의 관계를 돌아보라. 

결혼한 사람이라면 다른 관계보다 배우자와 자녀를 우선적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밖의 사람들보다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더 우선적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또한 여러분은 지역사회 속에서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는가?

특히 상처받고, 깨어지고, 소외된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는가?

바쁜 삶 속에서도 잠시 멈추어 그들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자신의 일정과 우선순위에만 몰두한 채 그들을 지나쳐 버리고 있는가?

그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기 위해 어떤 실제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는가?

설령 그들이 여러분의 원수라 할지라도, 그들의 필요를 돌보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개인적 희생을 요구할지라도 기꺼이 손을 더럽힐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사랑은 강과 같다 (Love is a river)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사도 요한은 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삶과 인간 존재의 본질을 담은 불멸의 말씀을 기록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자기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요한일서 4:7-12)

 

사랑은 모든 것의 중심이다. 사랑은 하나님의 성품의 중심이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사이에 흐르는 기쁨의 춤의 중심이다. 또한 사랑은 우리 삶의 중심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사랑을 알고 그 안에서 최고의 가치와 목적을 발견하도록 우리를 지으셨다.

그러나 사랑은 강과 같다. 그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그 사랑은 우리 삶 속으로 흘러 들어와 우리를 변화시키고, 다시 우리를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흘러넘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그 사랑의 춤에 참여하게 되고, 결국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게 된다.

이 진리는 너무 아름다워 믿기 어려울 정도이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이 책을 마무리하면서, 여러분과 내가 우리의 가장 높은 목적이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과 그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기를 바란다.

성경 프로젝트(The BibleProject)의 팀 매키(Tim Mackie)존 콜린스(Jon Collins) 의 강력한 표현을 빌리자면,

기독교 신앙은 우주의 중심에 세상을 향한 사랑으로 넘쳐흐르는 존재가 계시다는 사실을 신뢰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 존재의 목적이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다시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자기중심적이지 않고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데 있음을 의미한다.

 

'무너진 세상을 치유하는 10가지 단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장 사랑(Love)-6  (1) 2026.06.09
10장 사랑(Love)-5  (1) 2026.06.09
10장 사랑 (Love) -4  (0) 2026.06.09
10장 사랑(Love)-3  (0) 2026.06.07
10장 사랑(Love)-2  (0) 2026.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