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세상을 치유하는 10가지 단어

4장 결혼 -4

lamp365 2026. 5. 23. 12:13

탈(脫)결혼 문화의 쓰디쓴 열매

체스터턴은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자녀라는 이 진리의 삼각형은 파괴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그것을 무시하는 문명들을 파괴할 뿐이다.”

 

우리는 이미 이 결혼이라는 거룩한 제도의 해체에서 나오는 쓰디쓴 열매를 보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정치적·문화적 기능 장애의 상당 부분은 깨어진 가정과 실패한 관계에서 비롯되며, 많은 사회학적 연구들이 이를 보여 준다는 것이다.

1970년대 무과실 이혼법 통과 이후 급증한 이혼율은 두 세대에 걸쳐 정서적으로 상처 입은 아이들과 어른들을 남겼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꺼리게 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오늘날 결혼하는 사람들은 이전 세대보다 더 쉽게 이혼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비극적인 하향 나선이다. 이혼한 부모의 수가 증가할수록, 이혼하는 자녀들의 수도 함께 증가한다.

 

이혼, 동거, 그리고 성(sex)과 결혼의 분리는 혼외 출산율의 급증을 가져왔고, 그에 따르는 수많은 깨어진 삶들과 사회적 혼란을 낳았다. 오늘날 미국에서 태어나는 아이 100명 가운데 40명은 한부모 가정에서 태어난다. 히스패닉계의 경우 아이들의 53퍼센트가 혼외 출생이며,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동체에서는 가슴 아프게도 72퍼센트의 아이들이 미혼모 밑에서 자라고 있다.

1960년 이전까지만 해도 아프리카계 미국인 가정은 대체로 온전하고 강하며 회복력이 있었다. 특히 이 공동체에게 성혁명은 파괴적이었다.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말했듯이, “아버지 없이 자라는 아이들은 가난 속에 살고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다섯 배 높고, 학교를 중퇴할 가능성이 아홉 배 높으며, 감옥에 갈 가능성은 스무 배나 높다. 또한 행동 문제를 일으키거나 가출하거나 십대 부모가 될 가능성도 더 크다.”  많은 학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은 미국의 가장 시급한 사회 문제를 ‘아버지의 부재’라고 말한다. (물론 많은 한부모 가정이 하나님과 교회, 그리고 확대 가족의 도움으로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 자주 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려 한다. 많은 사람들은 흑인 청소년들의 높은 범죄율과 수감률을 구조적 인종차별 탓으로 돌리면서도, 방 안의 코끼리와 같은 현실—곧 폭증하는 혼외 출산율—은 무시한다.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보다, 우리는 이제 법 속에 아버지를 선택 사항으로 만들고 결국 불필요한 존재로 여기는 결혼의 정의를 새겨 넣었다. 그러나 이 현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한 사회를 파괴하고 싶다면, 아버지를 가족으로부터 떼어놓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결혼의 붕괴는 또한 빈곤을 증가시키고 사회복지 지출을 계속 늘어나게 만든다. 부모가 자녀를 돌볼 수 없거나 돌보려 하지 않을 때, 누군가는 그 빈자리를 메워야 하며, 그 역할은 대개 정부가 맡게 된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한 연구에 따르면, 1970년부터 1996년 사이 미국의 복지 지출 가운데 2,290억 달러가 결혼의 붕괴와 그에 따른 사회 문제들—십대 임신, 빈곤, 범죄, 약물 남용, 건강 문제—에 기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2008년 연구는 이혼과 혼외 출산이 미국 납세자들에게 매년 1,120억 달러의 비용을 초래한다고 밝혔다.

자살, 약물 남용, 우울증의 증가 역시 결혼과 가정의 해체가 가져온 사회적 분열과 연결될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미국 성인들의 외로움 비율은 20퍼센트에서 40퍼센트로 증가했다. 2017년 《First Things》에 실린 Aaron Kheriaty 의 글은 비극적인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최근 은퇴한 공중보건국장은 지난해 사회적 고립이 심장병이나 암에 버금가는 중대한 공중보건 위기라고 발표했다. 가족이나 다른 사회적 유대가 여전히 유지되는 곳에서도, 오늘날 그 관계는 과거 수십 년보다 훨씬 약해졌고 상호 의무감도 덜 강해졌다. 가족은 우리가 사회적 정체성과 안정감을 얻는 첫 번째 공동체인데, 그 쇠퇴는 많은 미국인들을 절망에 취약하게 만들었다. … 사회학자들은 결혼의 후퇴와 종교 참여 감소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을 기록해 왔으며, 특히 노동계층에서 두드러진다. 이러한 변화의 결과로 많은 미국인들은 “삶의 서사”를 잃어버렸다. 이것은 의미와 희망의 상실로 이어진다. 이런 상태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또 다른 쓰라린 결과는 동성 커플들이 생식 기술을 오용함으로써 발생하는 도덕적 혼란과 불의이다. 정자와 난자 기증, 그리고 대리모의 도움을 받아 그들은 아이들을 한 명 혹은 그 이상의 친부모로부터 떼어내 아버지나 어머니 없이 자라게 만든다. 앤더슨은 “이 경향은 아버지가 없거나 어머니 없이 자라는 아이들의 수를 의도적으로 늘리고 있으며, 아이들의 필요를 어른들의 욕망 아래 종속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피터 앱스는 더욱 직설적으로 말한다.

이것은 남자나 여자가 순간적인 유행이나 감상적 욕망의 충족을 위해 “아이를 가질 권리”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모든 아이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어떤 남성과 어떤 여성—곧 생식 행위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압도적인 권리를 가진다. 그 행위를 상업화하고, “아기를 갖는 것”을 사고파는 서비스의 영역으로 바꾸는 것은 … 아이들의 권리를 부정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미 빠르게 성장하는 보조생식 산업이 엄청난 수의 인간 배아를 파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동성 커플들이 아이를 갖도록 돕는 과정에서 태어나는 아이들보다 더 많은 잠재적 아이들이 파괴될 것이다. 이것은 악이다.

 

결혼의 붕괴는 또한 가족 규모와 출산율의 급격한 감소를 초래하고 있다. 1850년대 미국 가정은 여섯에서 아홉 명의 자녀를 두는 것이 흔했다. 오늘날에는 한두 명이 일반적이다. 2016년 8월 《The Week》는 “미국의 출산율은 이제 국가적 비상사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저자 파스칼-에마뉘엘 고브리는 이렇게 썼다.

 

"새로운 출산율 수치가 나왔는데, 참담한 수준이다. 현재 미국 여성 1,000명당 출생아 수는 59.6명으로, 미국 역사상 최저 수준이다. 그 원인의 대부분은 사람들이 더 늦게 결혼하고 더 적은 아이를 갖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모두가 이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한 국가의 건강을 보여 주는 가장 중요한 지표가 시민들의 출산 의지와 능력이라는 사실은 예전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지금도 사람들의 출산 의지는 미래에 대한 신뢰의 표시일 뿐 아니라 문화적 건강의 신호라는 점이 자명해야 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는 책임, 곧 아이를 양육하는 일에 헌신하려는 의지를 보여 주는 신호다."

 

왜 사람들은 점점 더 늦게 결혼하고 더 적은 아이를 낳는가?

물론 그 답의 일부는 농업 중심 사회에서 산업화·탈산업화 사회로의 변화에 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농장 일이나 집안일에 큰 도움이 되었다. 1850년대에는 아이들을 축복이자 경제적 자산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아이들을 경제적 부담으로 본다. 이것은 다시 모성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강화한다. 아이 양육과 가사노동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게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어머니들은 점점 더 집을 떠나 노동시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브랜다이스 대학의 린다 허시먼은 “시장경제에서 돈은 성공의 척도이며, 권력과 함께 움직이고, 가정 안에서도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기저귀를 갈아 주는 여성들은 “자발적으로 영향력 없는 존재가 된다.”

 

출산율과 가구 규모의 급격한 감소는 많은 서구 국가들에게 충분히 인식되지 못한 위기이다. 인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한 나라의 출산율은 여성 1인당 2.1명이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 사회도 출산율이 1.3 아래로 떨어진 뒤 회복된 적이 없다. 2015년 미국의 출산율은 1.8이었고 계속 감소 중이었다. 현재는 1.786이다. 그리스는 이미 1.3 아래로 떨어졌고, 이탈리아는 1.2, 스페인은 1.1이다. 30년 후에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토박이 인구 60퍼센트가 형제자매, 사촌, 이모나 삼촌이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이 문화들은 문자 그대로 집단적 자살을 하고 있는 셈이다. 50년 뒤에도 스페인, 이탈리아, 노르웨이, 일본이라는 나라 이름은 지도 위에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이전 문화는 거의 사라지고 다른 무언가로 대체될 수 있다.

 

유명한 말처럼 “인구통계는 운명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서유럽 국가들에서 누가 아이를 낳고 있는가? 무슬림 이민자들이다. 오늘날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남자아이 이름 1위는 모두 ‘무함마드’이다. 이것이 이 나라들의 미래에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가 이 길을 멈추지 않고 계속 간다면 어두운 날들이 앞에 놓여 있다. 결국 무너진 조각들을 다시 모아 사회적 자본을 재건할 사람들은 누구일까? 문화 전쟁에서 패배하는 쪽처럼 보이는 사람들—결혼의 참된 의미를 믿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평범한 남녀들—이 아닐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결혼의 진리, 그 장엄한 실재를 다시 발견해야 하며, 그 토대 위에 우리의 결혼과 가정을 세워야 한다.

 

만일 인구통계가 운명이라면, 이 진리를 따라 살아가고 자녀를 낳으며 그것을 신실하게 가르치는 사람들이 언젠가는 인구학적 죽음으로 향하는 쇠퇴한 세계관에 사로잡힌 사람들보다 더 많아질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수십 년에 걸쳐 해체된 것을 다시 세우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이 어두운 시대에도 희망은 뜻밖의 곳에서 움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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